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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 치과의사문인회](수필)세금고정/황규선

 


사자가 백수(百獸)의 왕(王)이라면, 황새는 군조(群鳥)의 황제(皇帝)랄까, 황새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새와는 달리 그 의젓한 풍모나 고고한 자태가 가히 속세(俗世)를 떠난 선계(仙界)의 운치(韻致)를 자아내는 새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고하고 청아(淸雅)한 풍골을 지녔다하더라도 정(情)에 현혹되고 뇌물(賂物)에 약하다면 그 고고한 아치(雅致)가 무슨 소용이랴.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 본성(本性)을 고고하게 지키지 못하고 속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세정(世情)이 각박한 탓 만은 아닌가 한다. 각설하고, 어느 왕조(王朝) 성군(聖君)이 나라를 다스렸던 태평세대(太平世代)에 황새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들어보자.
어느 날 만인지상(萬人之上)에 있는 임금님이 미복(微服)으로 야행(夜行)을 하다가 남산골 어느 빈민가 언덕길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오두막집들이 시야(視野)에 가득 들어왔다.


치인지위(治人之位)에 있는 이 임금님은 가난한 백성들이 어찌 지내는지 살펴보고 싶어졌다. 행자(行子)도 딸리지 않고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려보았다.
어느 집에서인가 낭랑한 글소리가 들렸다. 그 집 앞을 당도하니, 다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 불도 켜지지 않은 어두운 방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장 계시오."
잠시 글소리가 멎는다.
“주인장 계시오."
초라한 형색의 젊은이가 문을 빠끔히 열고 내다본다.
“뉘시기에 이 밤중에 찾아 오셨습니까?"
“지나가던 행인(行人)인데 잠시 쉬었다 가고 싶습니다만…"
“…?"
“…"


잠시 서로 말이 없다.
“누추합니다만 개의치 않으신다면 들어오시지요."
등잔불이 켜지고 주객이 마주 앉는다. 주인의 얼굴은 수척했지만 눈빛만은 반짝이고 있었다.
“글을 많이 읽으셨나봅니다 그려."
“웬걸요. 그저 기성명이나 할 정도지요."
“그런데 어찌 불도 켜지 않으시고 글을 읽으시나요."


“기름도 귀하지만 헌 책 몇권을 여러 번 읽게 되니 그저 외워서 읽게 되는군요."
“행유여력(行有餘力)이면 즉이학문(卽以學問)이라 하였는데 선생님께서는 여력(餘力)이 많으신가 봅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가난이 죄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러울거야 있겠습니까, 그저 부끄럽습니다."
객(客)은 문득 생각난 듯 방안을 휘 둘러본다. 한쪽 벽에 붙어 있는 묘한 내용의 글씨에 시선이 멈춘다.


‘단원당년(但願當年)에 무이와(無二蛙)라.’ 아무리 생각해도 금시초문이다.
“나도 글줄이나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저 글을 보니 도무지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소이다."
“보아하니 형장(兄長)은 아주 백신(白身)은 아닌 듯한데, 우리 같은 야인(野人)들의 떠돌이 말을 아실 수 있겠습니까?"
“….?"
“…."


잠시 대화가 끊긴다.
“개구리 두 마리가 없다니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하하하…. 정 궁금하시다면 우스개 이야기나 하나 할까요."
주인이 꺼내 놓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었다.
어느 따스한 초여름 녹음방초 우거진 숲속에서 아름다운 꾀꼬리란 놈이 노래를 부르며 노닐고 있었다. 마침 옆 자리에 비둘기가 앉아서 노래감상을 한다.
“꾀꼴꾀꼴 꾀꼴꾀꼴…."
간드러진 꾀꼬리 노래에 도취된 비둘기도 흥이 나서 반주를 하듯 맞장구를 친다.


“구구구구…, 구구구구…"
연못 가 풀섶에 있던 따오기란 놈이 내가 질쏘냐 하고 바리톤으로 베이스를 넣는다.
“꾹 꾸…웅, 꾸…욱,"
세 놈이 서로 다투어 불러대니 시끄럽기가 짝이 없다.
마침내 꾀꼬리, 비둘기, 따오기가 서로 자기의 노랫소리가 가장 아름답다고 우겨대니 입씨름이 대단하다.


그러나 승부가 날 리 없다.
“우리 서로 입다툼 할 것이 아니라 제 삼자에게 심사를 부탁해서 우열을 가려보자."
자신만만한 꾀꼬리의 제안이다.


“좋아, 그럼 노래 시합을 해보자는 거지?"
비둘기가 응수한다.
“그렇다면 가장 공평한 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