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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 치과의사문인회](소설)푸른얼 (1)/신 덕 재

냉냉한 2월의 밀폐된 영안실에는
수많은 혼령들이 뒤엉켜
짙은 향냄새에도 질식되지 않고
산 자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다


·수필가, 1995년 ‘포스트모던’등단
·서대문구 중앙치과의원 원장

 

7월의 장맛비가 한차례 뿌린 후 잿빛 하늘은 강한 빗줄기를 움켜쥐고 금새라도 쏟아 부을 듯 험상굳다. 땀이 속옷 사이로 골을 따라 흐른다. 후텁지근한 임진강 강바람이 물안개를 몰아왔다. 물안개와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오영임의 얼굴은 영락없이 구정물에 빠졌다가 나온 얼굴이다.
제한구역 철조망에 물방울이 매달려 있다. 무형의 물방울이 녹슨 철조망에 얽매어 있다. 철조망의 가시가 물방울을 찌르고 있다.


영임은 이창호의 잿빛가루를 강물에 띄웠다. 창호의 잿빛가루는 표면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수심 깊은 곳으로 퍼져 나가 강 여울에 휘말렸다. 그 모습을 보는 영임의 마음은 철조망에 찔린 물방울만큼 아리고 쓰라렸다.


서울로 향하는 통일로에 다시 강해진 빗줄기가 차창을 두드렸다. 빗방울 하나 하나가 영임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분화구를 만들었다. 차창 문틈으로 작은 빗방울이 튀어 영임의 머리를 때렸다. 마치 주먹만한 우박이 영임의 머리를 부수는 것 같다.
<그래, 나는 살인자다. 파란 마음의 이창호를 죽인 살인자다.>


냉냉한 2월의 밀폐된 영안실에는 수많은 혼령들이 뒤엉켜 짙은 향냄새에도 질식되지 않고 산 자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다.
혼령들이 창호를 사방에서 둘러싸고 창호의 알몸을 물어뜯고 있다. 창호는 갈기갈기 찢기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맞소!내가 저 사람을 죽인 사람이요. 나를 단죄하시오!>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영안실을 박차고 나왔다.


망령이 떠돌아다니는 밤이다. 동산의 작은 나무들이 창호를 쫓아 다녔고 거대한 병원 건물은 창호를 짓누르고 있다. 창호는 자책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영임은 자괴와 자책감으로 몸부림치는 창호를 그냥 볼 수가 없어서 창호를 동산 숲으로 데리고 갔다. 다소의 위로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다. 창호는 얼빠진 사람처럼 끌려갔다. 넋 나간 사람 같은 창호에게 영임은 힘주어 말했다.
“창호형!, 너무 자신을 학대하지 말아요. 형은 남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한 거예요.
예수님의 사랑을 사서라도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를 사랑하고 부처님의 자비를 빌려서라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자고 말하지 않았어요? 형은 그것을 실천한 거예요.


힘을 내세요. 형이 아니었다면 황 노인은 악성구강암의 아픔을 혼자 참으며 고통의 나날을 보냈을 거예요. 형이 이런 아픔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않았어요? 황 노인의 죽음은 형의 실수나 부주의가 아니예요. 황 노인의 부탁이었고 희망이었어요.”


고막 멀리에서 앵앵거리며 들려오는 영임의 목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힘주어 알아내려고 했지만, 창호의 팔다리는 뻣뻣해지고 숨은 잦아들었다. 영임의 말은 혼령들의 꾸짖는 소리로 들렸다. 창호는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황 노인의 악령이 창호를 옥죄고 있다. 그는 힘없이 쓰러졌다.


 영임은 당황했다. 창호를 살려야했다. 창호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뺨을 때리고, 창호의 가슴을 치면서 영임은 외쳤다.
“정신 차리세요! 정신 차려요! 창호형은 황 노인을 죽이지 않았어요. 황 노인은 당신을 용서할 거예요”
<내가 황 노인을 죽이지 않았다고? 황 노인이 나를 용서할 거라고?>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봉사정신의 의미를 알리기 위해서, 영임의 사랑을 위해서, 일어나야지!>


창호는 힘주어 영임을 끌어당겨 몸을 일으켜 세웠다. 깨어난 창호는 기절할 때의 허약한 창호가 아니고, 강렬한 의지와 억센 힘을 겸비한 맹호와도 같은 굳센 남자였다. 이제는 그는 보이지 않는 혼령에 시달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억센 팔이 영임을 감싸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