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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 치과의사문인회](소설)푸른얼 (2)/신 덕 재

하늘에는 실눈 같은 초생달이
찬바람에 눈을 흘기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군상들이
언젠가는 그 거짓으로
몸을 빼앗기리라


자애와 신의로써 인류에 봉사하여야 하는 의술을 천직으로 선택한 우리 의약인은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받아 이 땅위에 빈곤과 무지로 병마의 질곡에서 허덕이는 이웃을 도우며 …로 시작하는 무료 봉사팀에 창호가 들어 간 것은 불타는 봉사 정신 하나였다. 봉사 정신은 자기 희생을 요구한다. 창호는 자기 희생을 실천하고자 했다.


1984년 2월 3일 창호는 충청남도 당진군 신평면 동계 진료 장소인 신평국민학교로 향했다.
신평국민학교로 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였다. 울퉁불퉁한 자갈돌이 간밤의 추위로 도로에 단단히 박혀서 가끔 발 끝에 차이기도 했다. 집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산허리를 몇 구비 돌았다. 산허리의 잔설이 조용한 햇살에 마치 환부의 삼출액처럼 녹아 내렸다.


차인 돌부리의 아픔도 잊고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창호는 잠시 의료 봉사팀의 얼굴들을 떠올려 보았다. 해맑은 후배들과 무섭고 자상한 선배들, 회장인 진부영과 부회장인 영임이…. 신평국민학교에 도착하니 영임이와 부영이도 와 있었다.
신평면 소재지는 거대한 수용소 군도처럼 의료 혜택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의료 혜택의 전부였다. 신평면은 이처럼 낙후되어 있었다.


창호가 도착한 그 날밤 면장님의 인사 말씀이 있었다.
“우리 신평면은 삽교천 방조제가 건설된 후 급격히 발전을 했지요. 또 새마을 운동으로 농외 소득이 높아 가구 당 연소득이 450여만원에 이릅니다. 이는 당진군 내에서 높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보건소가 군 소재지에만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특별히 군수님에게 부탁을 하여 의료 봉사팀을 초청하게 된 것입니다.”
거짓은 항상 깔끔하다.


면장의 인사말은 누가 들어도 깨끗하고 그럴듯했으나 사실은 달랐다.
진료지 선택때, 면장은 신평면은 농외소득이 많아서 의료봉사팀을 받을 이유가 없고, 다수의 의료봉사팀이 와서 거쳐할 장소와 진료할 마땅한 곳이 없으며, 상부로부터 의료봉사대를 받으라는 지시도 없다는 등, 여러 핑계로 의료 봉사를 거부했었다. 그런데 중앙 부처에 간부를 아버지로 둔 회원이 있어서 그의 노력으로 면장의 뜻과 달리 진료지가 결정 되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창호는 면장의 인사말이 역겨워서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는 실눈 같은 초생달이 찬바람에 눈을 흘기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군상들이 언젠가는 그 거짓으로 몸을 빼앗기리라.
모든 사람들이 헛개비에 홀려서 자기를 잊고 있다. 소득증대, 수출증대, 올림픽, 명예, 돈, 땅투기… 헛개비도 많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