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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 치과의사문인회](소설)푸른얼 (5)/신 덕 재



생명을 다루는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살릴 수만은 없고
때로는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피고는 봉사 정신에 입각하여 진료를 했고, 피해자로부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청원이 있기는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주의 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는데도 이를 태만히 하고 부실한 의료시설 상태에서 피고 본인의 독단적 판단으로 정확한 진단과 증상을 파악하지 않고 시술을 해 환자를 사망케 한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이므로 1년 6월의 징역에 처함.”
판사는 준엄하게 판결문 주문을 읽어 내려갔다.


영임의 눈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실수도 아니며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한 것도 아니야. 다만 창호형은 자비와 사랑을 베푼 것 뿐이야. 어째서 사랑과 자비를 베푼 것이 죄가 된단 말이야. ”
영임은 자신도 모르게 방청석에서 일어나 창호에게로 달려갈듯 손을 내저었다.
재판정을 떠나는 창호의 모습은 아무일 없었던 사람처럼 무표정했다. 다만 매달리듯 허우적거리는 영임이를 한번 쳐다볼 뿐이었다. 영임은 행여나 하는 기대감이 무너진 허탈감에 빠져 있었지만, 마음만은 창호의 당위성에 채색을 더해 갔다.


인간이 사람의 죄를 규정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가? 죄의 유무를 떠나서 어떻게 인간이 사람을 벌 할 수 있는가? 벌을 주는 인간은 신처럼 깨끗하고 고결하단 말인가? 생명을 다루는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살릴 수만은 없고 때로는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후 창호는 항소하라는 영임의 요구를 듣지 않았다. 창호는 속죄의 틀 속으로 걸어만 갔다.
창호는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정해진 길을 따라 울타리 안을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니는 동물원의 호랑이가 됐다. 몸은 동물원 호랑이였으나 마음은 프로메데우스였다. 그는 카우카소스 산상의 바위에 묶여 있어도 심장만은 되살아나고 있었다. 시지프의 돌을 굴리며 영어(囹圄)의 생활을 한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오랜만에 영임이가 면회를 왔다. 그녀의 모습은 초췌하고 무엇에 쫓기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부영씨가 강남에 땅을 샀어요. 증권에도 손을 댔는데 요새 증권이 활황이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데요. 부영씨는 재테크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헛개비를 쫓는 부영이를 머릿속에 그리며 창호는 영임의 속마음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노력했다. 말의 뜻을 알지 못 했으니 이해하기란 더 어려웠다.


창호는 지식인이라고 해서 경제사범들과 같이 있었다. 경제사범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헛개비를 쫓아 다니는 사기꾼들 이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감방 생활의 일부였다.
“돈은 의사 놈들 처럼 벌어야 해. 이 새끼들은 공부 좀 했다고 해서 면허 받은 도둑놈들이야. 치료를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게 끄적끄적하고 치료비는 애 뱃년 배 때기 만큼이나 많이 받으니 의사 새끼들 돈 안 벌게 됐어?”
“그 새끼들이 치료만 해서 돈을 벌면 양반이지. 이번에 나도 의사 새끼한테 당했는데 그 새끼 돈 버는데는 박사야.”


“천하의 맹주사께서 어떻게 풋내기 의사 나부랭이에게 당하셨나?”
“말도 말어. 그 새끼는 의사 나부랭이가 아냐. 우리들은 그 새끼의 발 뒷꿈치도 못 따라 가. 글쎄, 이 새끼가 돈을 한 장 들고 흔드는거야. 그래서, ‘너 엿먹어 봐라’하고 다리를 걸었지. 그랬더니, 이 새끼가 코를 끼더라구. 옳다구나 싶어서 잡아챘지. 그랬더니, 이 새끼가 딴지를 걸어서 되려 나를 넘어 뜨리는 거야. 그래서,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로 내가 걸려들었지. 그 새끼도 걸려들었는데, 기름치고 빠져나갔어. 내가 걸었던 땅도 그 새끼가 먹었지. 기름칠 줄 알고 강남 제비 잡아먹는 꽃뱀이니 맹주사아냐 맹주사 할애비라도 당할 수 있겠어?”


감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헛개비 몰이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창호는 낯을 붉혔다. 이유는 창호가 의사여서가 아니라 지금 헛개비 몰이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