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8 (토)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문인의 향연 치과의사문인회](소설)푸른얼 (6)/신 덕 재

영임이는 현실의 어려움으로
종이학이 됐다
가슴이 텅 빈 종이학이었다
손가락 끝으로 살짝 누르기만 해도
찌그러지는 종이학이었다


보라빛 등나무 꽃이 송알송알이 늘어져 있고 진붉은 목단 꽃이 좌우 길을 인도하고 있다. 깃 짧은 양잔디 위에 5월의 햇살이 누워 있다. 이제 창호의 출소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신랑 진부영군과 신부 오영임양의 결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신랑 입장”
“신부 입장”
오영임은 학 이였다. 하얀 깃을 넓게 펼친 학 이였다. 비상을 위해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머리에는 루비 색 단점을 이었다.
진부영은 노루였다. 까만 눈은 생기의 표상이고 가는 다리는 순발력을 자랑했다. 몸에는 황금색 치장을 했다.


하객들의 모습은 한날의 영화를 다 모아 연초록 잔디 위에 오색 영롱한 공작의 날개를 펼쳐 놓은 모양이다. 공작의 날개 속에 창호가 있었다. 쇠사슬에 얽매인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창호를 인식하지 못했다. 다만 영임이 만이 창호의 모습을 확실히 보고 있었다.
“창호씨의 파란 마음은 나의 마음속 꿈이고 부영씨의 헛개비는 현실이었어요. 파란마음이 현실의 어려움을 다 채우지는 못했어요. 헛개비의 위력은 현실의 어려움을 씻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아무리 헛개비의 위력이 크다고 해도 파란 마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아요.”


영임의 말을 갈라진 창 틈으로 창호는 듣고 있었다.
창호는 부영이가 어떻게 헛개비 장난을 부려 영임이를 사로잡았는지를 안다. …장난과 관심, 동정과 연민, 위협과 협박, 마침내 돈.


영임이는 현실의 어려움으로 종이학이 됐다. 가슴이 텅 빈 종이학이었다. 손가락 끝으로 살짝 누르기만 해도 찌그러지는 종이학이었다. 거대한 헛개비는 종이학을 짓눌러 나래를 펴지 못하게 했다.
창호는 영임의 모습을 얼룩진 벽면에 그리며 자신의 파란 마음을 포개어 그렸다.
“가자, 나의 꿈을 불사르러…”


창호가 출감하던 날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복 허리였다. 창호는 토굴을 찾았다. 전라남도 무안군 동산리에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고 선택된 사람만이 들어가는 토굴이 있다.
손은 뒤틀리고 눈썹이 문들어진 사람이 찾는 토굴이다.
“여기에 파란 마음을 펼치자.”


시지프의 돌을 다 굴렸다고 해서 몸 속에 스며든 원죄를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슴속 깊이 흐르는 원초적 심정이 창호로 하여금 토굴을 찾게 했다.
토굴의 생활은  창호에게 새로운 활력과 힘이 되었다. 흐르는 고름(膿)은 사랑의 윤활유였고, 일그러진 얼굴은 피카소의 초상화였다.
이 뽑은 부위에서 나오는 선붉은 피가 이제는 창호를 창백하게 만들지 못했고, 일그러진 입 속에 균형 된 틀니를 맞추어 주고, 썩어 가는 턱뼈를 재생시켜 주는 창호의 손길은 사랑과 자비의 진수였다.


두려움도 없다. 괴로움도 없다. 창호의 손은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다.
창호는 거지의 행복을 깨달았다. 없다는 것이 불행이 아니며  죄악이 아니다. 토굴 속의 이티(ET)들은 가진 것이 없다. 다만 아플 뿐이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어서 아픈 것이 아니라 가질 수 없게 하는 것이 그들을 괴롭게 했다.


아프게 하는 것은 도처에 있었다. 사람들이 사람으로 보아주지 않는 것이 아프다. 선량한 그들을 죄인으로 보는 게 아프다. 그들 모두를 쓸모 없는 무지랭이로 보는 게 아프다. 물론 썩어 문들어저 나가는 살과 신경도 아프다.
구린내 나는 토굴이 파란 하늘빛으로 변해 갔다. 생존 그 자체가 기쁨이요 하루 하루가 즐거움 이였다. 파란 마음은 더욱 더 넓어져 갔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