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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답사기행(40)]보물섬 ‘남해군’ ‘봄’퍼나르는 충무공 바다로!!

바다와 함께 가는 길
바다를 향해 열린 마을
집집마다 낮은 지붕과 돌담
그것만으로도 행락객은 즐거워

 

충무공·충렬사 사당 등
‘장군의 기개’에 절로 숙연
남해대교·충렬사·이락사 잇는
벚꽃 터널·드라이브길 환상적


해엘 간다고 하면 어딜 가냐고 묻는다. 남해라고 대답하면 남해 어디냐고 다시 묻는다. ‘남해군’이라고 하면 ‘아! 그렇군요’ 한다. 동해에는 ‘동해시’가 있고, 남해에는 ‘남해군’이 있다. 서해에도 그에 걸맞는 도시 이름쯤 하나 있었으면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남해로 가는 길을 두 가지가 되었다. 예전처럼 하동에서 남해로 들어가는 하나의 길과 진주-사천-삼천포대교를 건너가는 방법 등 두 가지가 있다. 어느 길을 택하건 아름답기는 나라 안에서 손꼽을만하다.


이번 여행은 고전적인 방법인 하동을 지나 남해대교를 건너는 방법을 택한다. 꽃이 피는 봄에 이 길을 간다면 잊을 수 없는 몽환적인 길이 된다. 특히 구례를 지나 하동포구까지 섬진강과 나란히 달리면 산수유와 매화 그리고 벚꽃이 다투어 피어나 천상의 여행길이 된다. 섬진강이 끝날 즈음 푸른 바다가 가로놓인 곳에 닿게 되는데 그 너머가 남해다.


남해대교를 건너면 남해다. 남해바다에 놓인 다리라 남해대교인지, 남해군과 연결되어 남해대교 인지 모르지만 남해대교를 건너면 아름다운 섬 ‘남해’다.


사회교과서 표지 뒤 몇 장의 컬러사진에서 보았던 남해대교다. 1973년 개통되어 하동과 남해의 660m의 간격을 연결해주는 다리다. 다리 양 끝에 교각이 있을 뿐 중간에 교각이 없어 수려해 보인다. 그 아래 바다를 노량(露梁)이라 부른다. ‘이슬다리’라는 뜻이다. 마을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파도가 심하게 치면 그 물결이 마치 이슬방울을 뭉쳐 만든 다리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 꿈을 꾸면 현실처럼 보이고 그 꿈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바다를 자유롭게 건너고 싶었던 남해사람들의 꿈이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옛날  남해로 유배 온 선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파도를 다리처럼 보이게 했다고도 한다.


이젠 든든한 다리가 둘이나(?) 놓여 섬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섬이 가진 독특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그 독특한 아름다움이라는 건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는데 첫째 어느 길이든 바다와 함께하는 것, 둘째 바다를 향해 열린 마을, 셋째 집집마다 가지런히 쌓아올린 돌담과 낮은 지붕 등등이다. 그밖에 많은 것이 있지만 표현할 수 없는 심미적인 것이다. 


남해대교를 건너면 충무공을 생각게 하는 몇몇 유적이 있어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행락객들이야 바다를 보며 아름다운 감상에 젖어보고,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로 입맛을 돋우는 생각부터 하지만 천성이 옛 터전을 찾아보는 것인지라 충무공의 사당을 먼저 찾는다. 조촐하게 꾸며진 충무공의 사당에서 바다를 내다본다. 내가 보는 바다를 충무공도 함께 보았을텐데 그가 보았던 바다와 내가 보는 바다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이 땅에 왜적들이 들어와 분탕질을 일삼던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나던 때 그들은 이 바다를 건너 저들의 나라로 돌아가고자 했다. 명나라 제독 진리에게 뇌물을 줘가며 바닷길을 열어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충무공이 지키는 조선의 바다에서는 명나라도 문을 열 수 없었다. 한 놈의 왜구라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결심은 조선 백성들의 원한이 푸른 바다보다 깊었기 때문이다.


순신이 여러 시기하는 무리들로부터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한 사이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함대는 왜군에 의해 전멸당하고 말았다. 전쟁의 와중에도 파당을 지어 싸우기 바빴던 나약한 조정의 신료들은 전쟁이 끝난 후의 공과를 생각하며 정적을 제거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순신 뿐 아니라 의병으로 참가하여 혁혁한 공이 있는 자를 역모라는 모함으로 죽이고, 갖은 죄목을 뒤집어 씌어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