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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 치과의사문인회](수필)알프스 마터호른, 첫 등정의 비극(하)/이병태

<1445호에 이어>


웜퍼는 동이트기 전, 대원 여섯 명과 함께 장비를 꾸려서 날이 밝자마자 바로 등반을 시작했다. 마터호른의 동측으로 등반했던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들은 리지쪽으로 등반로를 변경하여 단축된 길을 이용함으로써 카렐의 등반대보다 짧은 시간 안에 더 높이 오를 수 있었다. 눈 덮인 숄더 위를 따라 발 빠른 전진을 계속하면서 두 차례의 휴식도 취하였다.


웜퍼와 허드슨이 교대로 지휘를 해 오다가 두 번째 휴식 이후부터는 크로가 지휘를 맡았다. 정상이 가까워올수록 루트는 점점 더 험난해졌다. 발 디딜 곳을 찾아 오른쪽으로 조금 이동하자 정상이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기술적으로는 더없이 어려운 루트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무사히 넘긴 후 대원들 모두가 마터호른 정상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날씨도 좋았다. 먼저 출발했던 이탈리아 팀의 발자국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들은 감격에 휩싸였다. 이로써 8년간의 초등경쟁은 종지부를 찍었고 마터호른은 마침내 인간에게 정복되었다. 역사적인 1865년 7월 14일이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파리의 바스티유에서 소용돌이쳤던 프랑스혁명기념일(1789년 7월 14일)과 같았다.


바스티유의 해방처럼 마터호른이란 거대한 요새도 마침내 그 빗장을 열었던 것이다.
정상정복의 환희에 잠겨있던 크로와 웜퍼는 얼마 후 고도 200m 아래에서 정상을 향해 올라오고 있는 이탈리아 등반대를 발견하였다. 카렐이 지휘하던 그들은 천천히 정상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는데, 웜퍼의 승리를 확인한 카렐 팀은 등반을 포기하고 등을 돌려 그대로 하산해 버렸다.
한동안 휴식을 취한 웜퍼와 허드슨의 대원들은 하산 순서를 정했다. 정상에 대원들의 이름을 쓴 종이를 넣은 병 하나를 묻어놓은 후 하산을 시작하였다. 맨 앞에서 팀을 이끄는 리더는 크로가 맡고 그 뒤에 해도우, 허드슨, 더글러스 경, 그리고 아버지 피터 타우그발더, 웜퍼, 아들 피터 타우그발더, 이런 순서였다.


곧바로 대원들은 마터호른의 ‘지붕’ 아래 부분까지 내려왔다. 지붕이라 함은 정상 부분의 형태가 지붕의 용마루처럼 생겼다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실제로 이 지붕을 통과하기란 매우 어렵다. 엄청난 기술과 훈련을 쌓지 않고서는 무사히 지날 수 없는 곳이다. 수없이 산재한 바위 균열에다가 그 균열위에 눈과 얼음이 덮여져있고 손으로 잡을만한 부분이 없어 건너기가 아주 힘이 들었다.


이런 악조건에서는 안전제일로 한 사람씩 조심스럽게 이동해야만 한다.
크로가 선두로 내려온 다음 절벽 건너편에서 하산하는 해도우를 돕기 위해 빙벽에 의지한채 아이스 액스로 몸을 지탱하는 순간, 해도우가 실수로 미끄러지면서 크로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크로를 비롯하여 해도우, 허드슨, 더글러스경 세 사람까지 한꺼번에 까마득한 빙벽 틈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더글러스경과 아버지 피터 타우그발더를 연결했던 로프가 끓어졌던 것이다. 그 것은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타우그발더 부자와 웜퍼 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세 사람은 생존했지만 공포와 충격에 몸부림쳤고 네 사람을 삼켜버린 마터호른의 지붕위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적막과 고요만이 흘렀다.


대참사의 공포 속에서 간신히 조금씩 내려오는데 덧없이 날은 저물어 고도 4,100m에서 밤을 맞이했다. 기나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고개를 떨군 채 세 사람은 다음 날 체르마트로 돌아왔다. 슬픈 소식이 전해진 체르마트는 크나큰 비통 속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7월 16일, 일요일)새벽 2시, 웜퍼와 영국 산악인 세 명, 프랑스 산악인 두 명, 그리고 산악 가이드 세 명으로 편성된 구조대가 마터호른으로 출발하였다.


수색대는 마터호른 빙하 위에서 세 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크로, 허드슨, 해도우의 것이었다. 더글러스경의 시신은 찾지 못했는데,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지품만 발견되었다. 3일 후 산악 가이드 21명이 시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