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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 치과의사문인회](수필)추억의 사진 한장/김영훈

잎이 돋아나고 꽃피는 봄날이다 싶으면 어느덧 강열한 열기를 시샘하는 듯 태풍이 요동친다. 그리고 가을을 타고 겨울이 엄습한다. 이렇듯 계절이 바뀔 때 내게 더없이 소중했던 추억 하나가 가끔 가랑잎처럼 스쳐가곤 한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사춘기를 지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복을 사 입지 못하고 학교를 마쳤다. 우리가 자란 연대는 먹거리나 옷가지가 부족해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저 주는 대로 먹고 입던 시대였다.


일제치하에 태어나서 해방과 보릿고개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근면과 검약으로 가난의 태산을 넘으시던 내 어머니를 불평 한번 하지 않고 따랐던 나의 학창시절이었다.
내 고향 양지말이란 동네는 재봉틀이 2대 밖에 없었던 빈농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나의 큰집보다 우리 집에서 재봉틀 소리가 더 자주 났던 것 같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여자들은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풍습이 남아있었는데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우리 논배미가 어딘 줄도 모르게 농사에는 문외한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6·25로 졸지에 혼자가 되신 나의 어머니는 들일보다 옷솜씨가 좋으셨던 모양인지 동네 사람들이 부탁하는 옷을 만들어 주고 그 품앗이로 농사일을 시키셨다. 그 시절만 해도 자급자족하는 일이 많아서 길쌈한 옷감에다 염색까지 하여 우리 5남매의 옷을 해 입히시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라 장롱 속 깊이 간직했던 신사복들을 뜯어 내 교복을 만들어 주시면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학생복인 줄 알고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 양복이야 학생복에 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신사복과 학생복의 구조는 전혀 다른데, 목덜미까지 올라오는 학생복을 만들어 고리까지 달아주셨고 자투리로 짜깁기를 하던 시대가 우리의 과거였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눈썰미가 있는 한 친구가 말했다.
“너의 옷은 왜 어깨는 좁은데 아래통(둔품)이 넓으냐?”


 비로소 그제야 내 옷이 재생품으로 균형이 잘 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자가 부족해 그땐 작은 거울이 유행했다. 요즘처럼 대형거울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온 몸을 비춰 보지 못했다. 친구들이 입는 교복을 보는 것으로 내 옷도 의당 그렇겠거니 하며 한번도 옷타령을 해본 적이 없다. 이런 시기인지라 멋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발소도 멀어서 우리 집엔 서랍 속에 이발기가있었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그래도 쉬웠는데 어머니가 내 머리를 밀어 주실 때는 뿌리째 뽑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는 눈물만 뚝뚝 쏟았지, 군소리 한번 못했던 것 같다. 고학년이 돼 도회지로 나갈 때까지 그걸 어떻게 참아냈는지 지금 상상해봐도 모를 일이다.


졸업 무렵 친구와 같이 대학 입학원서의 사진을 찍고 나서, 공연한 내 옷보다 어쩐지 좋아 보이는 그 친구의 상의를 빌려 입고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취해보던 추억도 내게는 있다.
옷을 빌려준 그 친구는 지금 워싱턴에서 미래의 학생이 될 아기들의 엉덩이에 주사를 놓고 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나보다 덩치가 훨씬 커서 내 몸에 맞을 리 없었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앞가슴이 겹쳐있는 듯한 웃는 그 모습이 정말 가관이다.
그 후 대학으로 진학하여 서울로 오게 되었고, 다시는 내려갈 기회가 없어 다른 친구들과도 소식이 끊기게 되었다.


1년 후 사촌 여동생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그때의 사진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크게 확대돼 사진관의 한 진열장에 내다 걸리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사진관은 여학교 정문으로 이어지는 큰길가에 있었는데 등하교길의 여학생들이 그 앞을 지날 때면 시선이 다 쏠린다는 내용이었다. 못난 내 얼굴이 그렇게도 당당히 여학생들이 훔쳐보는 스타가 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