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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 치과의사문인회](수필)말기환자의 대화/박용호

말기 암 환자이거나 임종이 임박해 보이는 경우 힘들게 치과에 내원하면 사실 치과의사도 환자만큼 불안하고 찜찜하다. 구강통증을 해소하려고 애쓰고 왔는데 무조건 대학병원에 가라고 나 몰라라 하기는 직업본성에 위배되므로 마음이 불편하고, 참고 해주자니 의료사고가 염려되어 손대기가 뭣한 것이다.


매일 안전하게 밥 먹듯 쓰고 있는 리도카인이지만 이런 환자에선 만일 잘못되면 주사 탓이라고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다 건들거리는 치아는 그냥 그대로 발치하고 싶은 유혹도 생기지만 그렇다고 마취를 안 하고 하는 것은 고통을 안겨주므로 생각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눈치 챈 환자가 “아무 걱정 말고 빼주세요, 선생님께 뭐라고 안할 테니…."하는 경우도 있지만 뒷감당이 두려운 것이다.


몇 년 전 사촌 형님이 내원 했었다. 간경화로 인한 오랜 투병생활로 매우 병약한 상태인데다 후두암으로 수술을 받은 직후라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내가 어렸을 적 날렵하고 쌩쌩 다니던 용돈도 잘 주는 형님이었건만 지금은 가느다란 두 다리는 휘어서 걸음마저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 움푹 패인 눈과 튀어나온 광대뼈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미 사십대부터 틀니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수술을 받고 나니 틀니가 전혀 안 맞아 뭘 좀 씹어 먹고 싶다고 찾아오신 터였다.


하악골은 다 흡수되어 손으로 만져보면 채 일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하는 정도여서 본을 뜨다가 부러지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였다. 게다가 목의 임파선을 절제하는 통에 근육이 위축되어 강직증이 있어 트레이가 입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트레이를 만들어 리찌도 전혀 없는 본을 뜨고 책을 뒤적거리며 틀니를 제작하는 과정은 형님이 아니라면 아마 시도도 안했을 터였다. 치조골 두께보다 틀니의 두께가 두 배 이상 두꺼우니 예상대로 저항력이 낮은 잇몸은 견뎌 내지를 못하고 항암제 탓으로 침의 분비는 안 되고 점막은 자주 염증이 생겼다. 형님도 실망하고 나도 진이 빠졌다.


형님은 틀니 높이가 높아서 그런 것 같으니 본을 다시 떠서 다시 한번 더 해보자고 했으나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끔찍해서,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고, 형님같이 심한 경우는 처음이고 형님이 아니라면 대학병원에 의뢰했을 것”이라고 말씀드리자, 큰 눈을 말없이 껌뻑거리며 그제서야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어렵게 인공타액을 구해드렸는데 그 후 몇 개월 뒤 돌아가셨다. 나는 자책감이 생겼는데 장례가 끝난 뒤 사촌누님이 마지막 가는 길에 틀니를 해주느라고 애썼다고 알아주는 통에 다소 위로가 되었다. (그 누님은 미국에서 오랜 간호사 생활을 한 터이라 환자들의 생리를 잘 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형님은 나의 의술의 한계를 넘는 난 케이스였는데 혈육이라 판단력을 잃었던 것 같다. 날 믿는 형님이니 의료소송이 있을리없고 부작용에 대한 설명도 입안에서만 맴돌지 언급도 없이 한번 해보자고 덤벼들었던 것이다. 형님은 진료가 너무 인정에 이끌려서도 안된다는 것을 재확인해 주고 가셨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직전 입원한 상태에서 호흡곤란이 와서 기도절개를 받은 상태라 직감적으로 이제 얼마 안남으셨구나 했는데, 정작 본인은 삶의 의지 때문인지 죽음의 기색이나 언급은 전혀 없는 것이었다. 당신이 지켜야할 주의사항이라든지, 할말을 글씨로 또박또박 써서 아직 정신은 명료함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말기 환자의 마지막을 관찰하는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객관적으로 곧 죽을 환자도 실제 자기가 죽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또 회피한다고 한다. 이것은 지위고하와 학식의 유무를 떠나 거의 공통된다고 하며 그래서 유서는 고사하고 죽음이 자기와는 별 상관이 없는 먼 훗날의 일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부정( 否定 )이라고 하는 마음의 기전이 마약같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환자일지라도 가족이나 치과의사의 입장에서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듯 하다. “얼마나 사시겠다고, 얼마나 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