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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소설)바보죽음(2)/신덕재

ㄱ자 윗면을 칠하기 위해
손을 한껏 뻗쳤다
그 순간, 찌지직 소리와 함께
흰 섬광이 스쳤고…


변전소 철탑은 ㄱ자 모양의 철강을 나사 볼트로 엇이어서 만든 구조물이다. 수색 변전소는 서울 서부지역과 경기도 일산고양 지구의 전기를 공급하는 곳으로 규모가 엄청났다. 철탑이 기차 길의 전신주처럼 일직선으로 늘어선 모습이 북경 자금성의 회랑 기둥과 같다. 일정한 간격으로 격자모양의 방을 연상케 하는 구조물에 은색 페인트를 칠하는 일이다. 도색을 함으로써 철제 구조물의 부식도 막고 전기 누전을 차단한다고 한다.


철탑의 높이는 6m이고 3m 위치에 1.5m간격으로 2단의 전기 선로(線路)가 지나간다. 그러니까 철탑 하단 부위에서부터 전기 선로가 지나가는 철탑 상단까지 은색 페인트를 칠하는 일이다. 다른 페인트칠과는 사뭇 다르다. 요사이는 주로 컴푸레셔로 공기를 압축하여 페인트를 분사시켜 페인트칠을 많이 한다. 그런데 철탑 페인트칠은 일일이 페인트 붓으로 ㄱ 자 모양이나 ㄴ자 모양의 후미진 철 구조물 부위를 손으로 칠해야 한다.


사실 돼지사장의 청을 거절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철탑의 페인트칠이 분사식이 아니고 손으로 직접 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인트칠이라는 것은 손으로 일일이 칠하면서 손놀림의 붓 맛을 느낄 수 있어야지 물뿌리개처럼 쭉 뿌려서 칠을 하면 칠이 살아나지 않고 죽은 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철탑 칠은 붓 맛을 느낄 수 있는 칠이어서 좋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일하기가 더럽게 힘들다. 이번 철탑 일도 그렇다. 그래도 하단 ㄱ자나 ㄴ자 부위의 구부러진 곳은 보고 칠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보이는 곳이니 쉽게 칠할 수 있다. 그런데 상단 부위는 그렇지가 않다. 특히 ㄱ자 부위의 윗면은 그 위에 올라가지 않고는 손을 꼬부려 칠을 해야 한다. 힘이 들더라도 손놀림을 바르게 하여 후미진 곳까지 잘 칠할 수 있어서 나에게는 흥이 났다.


전기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안전수칙을 지켜야 한다. 손에는 고무장갑을 끼어야 하고 단전 헬멧을 써야 한다. 15만볼트 이상의 전기가 흐르는 곳에서는 전선 50cm 내에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 현장 감독은 5m 이내에서 페인트공의 작업을 주시해야 한다. 모든 작업에 앞서서 전기의 흐름을 죽이고 안전한 상태에서 시공을 해야 한다.


돼지사장은 어떠했는가? 안전수칙? 돼지사장의 머리 속에는 안전수칙이란 단어는 없다. 다만 하루 빨리 공정을 끝내 일꾼의 일당을 줄이고, 페인트의 사용량을 줄여, 관급을 딸 때 친 기름 값을 얼마나 많이 빼느냐 하는 것뿐이다.


나는 오늘 김씨와 같이 뺑기칠을 했지.
김씨는 돼지사장이 데리고 있는 날 품팔이이다. 김씨는 한 칸 건너에서 칠을 했다. 김씨를 건너다보니 김씨는 하단을 모두 칠하고 상단을 칠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엉망으로 칠을 했다. 어려운 곳은 칠을 하는둥 마는둥 한번 붓질이 지나가고 말았다. 페인트칠이라는 것이 남 눈 속이기가 아주 쉽다. 정말로 칠을 잘 하려면 먼저 접착성 높은 칠을 하고 다음에 애벌칠을 하고 다음에 윤이 나는 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마다 붓질을 여러 번 해서 골고루 페인트가 퍼져 있어야한다. 이것이 손놀림의 붓 맛인 것이다.


김씨가 한 것을 보니 처삼촌 벌초하듯 희끗희끗 듬성듬성 대충대충 칠한 모양이 역역하다. 그래도 빠른 시간 내에 칠을 마치니 돼지사장에게는 훌륭한 일꾼인 것이다. 그 사장에 그 일꾼인 것이다. 그렇다고 김씨를 나무랄 수 없다. 나도 돼지사장 밑에서 김씨와 같이 일하는 처지에 남보고 콩이네 팥이네 참견할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일을 했다. 집 칠을 하면서 느꼈던 손놀림의 붓 맛을 느끼면서 쟁이답게 칠을 했다.


오후 새참을 먹고 나니 김씨는 칠을 거의 마쳤다. 김씨도 오후 새참까지는 일을 한다. 그 전에 끝나면 오후 새참을 못 먹으니 말이다. 아직 나는 상단의 칠이 남았다. 김씨가 칠한 상단 칠은 하단보다 더 엉망이다. 쉬운 곳도 형편없는데 어려운 곳은 어떠하겠는가? 하여간 엉망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