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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답사기행(43)]한국 ‘지성’들과 떠나는 여름 여행 안동 북부 도산서원

명호∼도산서원 낙동강 700리 비경
이현보·이황·이육사 영남 대표 학자
농암종택까지 2.5Km ‘걸어야 제맛’


고산구곡·벽력암·학소대·단사협…
퇴계 올 곧은 삶과 학문이 그대로
‘청포도’ 시인 항일 자취도 ‘알알이’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서 그 산이 만들어내는 자연적 영역 구분이 상당히 많다. 행정적으로도 구분시킬 수 없는 영역이 무수히 많다. 나의 고향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이 나뉜다. 그러나 행정구역과는 상관없이 그곳 출신들은 고향이 같다는 동질감을 갖고 있다.


답사는 행정적인 지역 구분보다는 역사와 세월이 만들어낸 문화적인 영역을 찾게 된다. 이번 여행길은 경북 봉화에서 안동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일대 문화지역을 찾아간다. 퇴계의 고향이다. 안동 북부는 안동이 만들어내는 여러 영역중에서도 특별하다. 이곳에는 조선의 큰 학자 퇴계가 있다. 그리고 퇴계의 스승이었던 농암 이현보와 퇴계의 후손이었던 시인 이육사의 고향이다. 영남 사림들은 퇴계를 정점으로 모이고 흩어진다. 퇴계의 학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이 그들에게 크나 큰 자랑이다.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내려 영주를 지나니 예전에는 봉화를 지나가는 구불구불한 국도였으나 지금은 고속도로 못지않은 외곽도로가 개통되어 있다. 아직 완전개통은 아니지만 시간을 많이 단축시킨다. 봉성방향으로 내려서 봉성을 지난다. 여기까지는 봉화땅이다. 봉성에서 명호에 이르면 낙동강이 곁으로 다가온다. 이제부터는 낙동강과 함께 하는 여행길이 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명호에서 도산서원으로 이어지는 이곳이 낙동강 700리에서 가장 아름답다.


명호에서부터는 봉화의 명산 청량산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청량산도 퇴계의 유적이 있으니 퇴계를 찾아가는 답사길에서는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다. 청량산 입구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농암종택, 분강촌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길 한쪽에 농암 이현보 문학비도 보인다. 농암은 조선시대 한글 어부사 14수를 처음 쓴 전원시인이자 청백리로 이름 높은 분이다. 여기서 농암종택까지는 2.5km.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게 어리숙하게 보일 정도.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마을 한쪽에 세우고 걸어가게 되는데 그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한번은 40명을 인솔해서 이곳으로 가는데 버스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길이었다. 노련한 기사님의 운전솜씨를 믿으며 500m 쯤 전진하니 ‘야!’ 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인솔자는 눈치가 빨라야 한다. ‘이 길을 차를 타고 들어가는 것은 비문명인이나 할 수 있는 짓이다. 걸어서 가자!’라는 표현이다. 2.5km정도 되는 길이다. 버스로 약간 들어갔으니 약 2km정도 걷는다. 낙동강 푸른 물이 시원스런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흘러간다. 아늑한 마을이 건너편에 보이고 첩첩 산들은 여기저기서 응대한다. 길 끝에 농암 이현보 선생 종가가 있다. 종가는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여기서 더 하류로 내려가면 도산서원에서도 더 내려간 부내라는 곳에 있었다.


1975년 안동댐으로 인해 수몰되는 것을 차마 수장시킬 수 없어 농암종택, 서원과 딸린 정자, 별당들을 여기저기 흩어서 옮겼다. 농암이라 새긴 바위는 글자만 따로 떼어 애일당 마당에 옮겼다. 안동에는 댐(안동댐, 임하댐)으로 인해 고향을 잃은 종가가 한둘이 아니었다.


현재 농암 종가를 지키고 살아가는 이성원씨는 농암의 17대 종손이다. 종손은 옛 고향에서 7km정도 상류로 올라온 이곳에 반해 종가를 옮겼다. 옛 고향 같지는 않지만 풍광은 절경이었다. 종손은 낙동강변을 따라 걸었다. 거기에서 퇴계가 노래한 고산구곡을 찾아내게 되었다. 퇴계가 살던 마을에서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예던길’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퇴계가 노래했던 벽력암, 학소대, 단사협, 갈선대 등을 찾아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예던길’을 걸어보고 싶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는다.


농암종가에서 시작해 하류로 내려가는 이 길은 걸어서 40분 정도면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