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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치과의사문인회)-소설-]바보죽음(4)/신덕재

쑤시고 아린 찌름이
한 순간에 오는 듯 하더니 
갑자기 온 몸이 깃털처럼
사뿐히 내려앉고 거품이 소리 없이…

 


돼지사장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면서 내가 자살을 하려고 철탑 상단에 올라간 것처럼 넌지시 자살 기도를 암시했다.
경찰은 이번 일을 자살로 처리해야 사건처리가 쉽고, 돼지사장도 자살로 밀고가야 안전수칙 미비라든가 안전교육 미비와 같은 골치 아픈 일이 없을 것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고, 북 치고 장구치는 격이다.


북 치는 경찰은 나보다 유사장을 두둔해야 일 처리가 좋다. 어차피 구씨는 죽을 것, 타살이나 사고사로 인한 변사체로 처리하면 검사의 사건지시를 받아야 하고 가해자나 피해자의 조서를 받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니, 구씨 스스로 자살에 의한 사망으로 처리하면 이런 번거로움이 없어질 것이고, 일 처리를 유사장에게 유리하게 잘 마무리하면 유사장으로 부터 뒷돈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경찰은 김씨에게 다시 자살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다그쳐 물었다.
“ 김씨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예편네도 없고 애새끼도 없으니 살맛이 나겠습니까? ”
김씨의 말은 결정적으로 나를 자살로 만들었다. 무식한 사람은 야료를 못 부리고 곧이곧대로 말한다는 통설이 있지만, 무식한 김씨가 야료를 부리니 야료라면 둘째가기 싫어하는 돼지사장을 능가한다.


이것은 분명 쨉새, 돼지사장, 김씨가 짜고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서로 말이 맞아떨어질 수 있단 말인가? 쨉새는 얼르고, 돼지사장은 추스리고, 김씨는 오금박고, 삼박자가 잘도 맞는다. 이 놈들아!
죽지도 않은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다니 억울해서 못 살겠다.
내 꼭 살아서 네놈들의 조작을 만 천하에 알리리라. 내가 흥분을 했나? 고통의 아픔이 더욱 더 저려오고 쓰려온다. 특히 발 쪽의 아픔이 심하다.
이제 발은 흑검댕이가 되어 있다. 숯과 같다. 발바닥 가죽은 타다만 숯 장작개비처럼 줄줄이 골이 패여 있고 그 사이로 진물이 흥건히 흘러나온다.


오줌이 안나온다. 성기는 오그라들어 번데기처럼 쭈글쭈글하고 벗겨진 자리에는 물집이 고여, 마치 희뿌연 곱태가 낀 것 같다. 쑤시고 아린 찌름이 한 순간에 오는 듯 하더니 갑자기 온 몸이 깃털처럼 사뿐히 내려앉고 거품이 소리 없이 사그러지듯이 가볍고 홀가분해 진다.
페인 쇼크(Pain Shock :동통쇼크)가 일어난 것이다. 동통쇼크는 아픔의 정도가 심해 참을려는 정신적 한계를 넘어서 극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아픔을 깨닫지 못 하도록 한 순간에 정신을 잃게 하는 보상현상으로 일어나는 생리적 현상이란다.


아픔의 신경자극이 극에 달하면 페인 쇼크가 오는 모양이다.
지금 내가 아픔의 극에 도달한 것이다.
그 놈의 쨉새와 돼지사장, 김씨의 엉터리 수작에 의한 흥분, 양다리로부터 오는 동통이 나를 더 이상 지탱케 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게 한 것이다. 정신을 잃었다면 내가 죽었다는 것인가?
그러면 어지럼증이나 기절도 죽음 현상인가? 기절이나 어지러움증이 정신을 잃은 것이긴 하나 심장이 뛰고 숨을 쉬니 죽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페인 쇼크도 죽은 것은 아니다. 다만 고통을 이기지 못해 생긴 삶의 현상인 것이다.


삶의 현상! 삶! 삶! 살아 있구나!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살아있다. 심장이 뛰고 숨을 쉬면서 내가 살아 있는데 왜 가망이 없다느니 자살이라느니 떠들어대는지 모르겠다.
“아 참, 골치 아파 죽겠네, 마누라라도 있어야 피해자 조서를 받을텐데 연고자가 아무도 없으니 말이야”


경찰이 장가 못 간 나를 나무란다.
어차피 죽을 것이면 자기라도 편하게 할 일이지 모두 가는 장가도 아직 못가서 자기를 성가시게 군다고 투덜된다.
“유사장, 구씨 여동생이 있다면서 어디 있는지 알아 볼 수 있어요?”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