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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치과의사문인회)-소설-]파리채와 하이나싱의 6월 (끝)/김영훈


한편 순철이 할머니댁 뒤주 속에 숨어 있던 이양수씨는 그날 밤 몰래 빠져 나와 다시 부안 쪽으로 갔다. 마침 그날 밤에 빨치산들이 줄포를 습격하는 날이었다. 경찰과 빨치산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양수씨는 유탄을 맞고 줄포중학교 언덕에서 쓰러졌다.


빨치산들에게 손을 뒤로 묶인 채 끌려간 김대성씨는 흥덕 저수지 아래 구렁지에서 죽창으로 학살당했다. 빨치산이 주장하는 죄목은 스파이였다. 가을 추수거리와 만삭이 된 아내를 못 잊어 달려간 사나이가 경찰의 첩자로 오인된 죽음이었다. 변장하고 지나가던 노승은 처참하게 쓰러진 현장을 보고 흙으로 덮어 주었다. 망자는 생전에 시주한 덕으로 진짜 짐승들의 먹이는 되지 않았다.


김대성씨의 부인은 유복자를 순산했으나 그 아기는 속세의 이름이 붙기도 전에 얼굴도 보지 못한 애비를 따라 저승으로 가고 말았다. 난리통에 의사의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순희의 어머니는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한 채 빨치산들의 다니던 길을 따라 남편의 시신을 찾아 헤매야했다. 3개월 뒤 스님의 전갈로 저수지 아래 흙더미를 찾아냈다. 인부가 흙을 걷어내자 김대성은 흙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분해 되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죽은자가 누구인지 확인 할 수 없었다. 겉옷을 걷어내자 내의가 나왔다. 순희의 어머니 눈이 번쩍 뜨였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명주묵줄로 뜨개질한 내의가 나왔다. 전쟁 전 겨울밤 내내 호롱불 밑에서 김대성의 아내가 한 코씩 떠 만든 내의였다. 한 인간의 육신은 변했어도 아내의 정성이 담긴 명주묵줄은 질겨 그대로였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남편이 살아만 있기를 빌었던 김씨부인은 통곡하고 말았다. 그 슬픔은 저수지 둑을 넘어 잔잔한 물결을 타고 흘러갔다. 두 사람의 따뜻했던 명주묵줄도 녹아내려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까지 사랑의 명주실로 닿을 것이다. 당시 37세 청상과부가 되어 지금 96세 된 김대성씨 부인은 꿈에서나 망자와 대화를 할 것이다.


그 무리들을 소탕하기에는 부안경찰서의 관내 무기로는 모자랐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경찰들은 감나무작전을 전개했다. 변산 주변에 감이 붉게 익는 때, 경찰들은 산간마을로 들어가 감을 따다 팔아, 군산으로 가서 무기를 사다가 치안을 유지했다. 도시는 치안이 잘 되어 무기가 남아돌았고 산간에는 공비가 많아 무기 부족으로 전투력이 열악했다. 그 당시 M1 소총은 쌀 5말, 따발총은 쌀 1가마의 값이었다고 한다.
변산의 빨치산이 소탕되고 몇 년 지나, 김대성의 아버지 김옹은 후처의 실수로 아들을 잃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후처와 후처소생을 이끌고 빨치산들이 사라진 변산의 한복판, 중계로 들어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여생을 지냈다.


완전히 공비를 토벌한 후에도 경찰은 자수한 빨치산의 행적을 추적하며 민간인들을 조사했다. 공포에 질려 야밤중에 공비에게 재물을 약탈당하거나 돈을 준 주민들은 경찰서에 끌려가 문초를 당했다. 도경찰국까지 넘겨져 고초를 받은 사람도 있다. 최후에는 도경 수사관들이 무기를 사야 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며 양민들의 주머니를 뜯어내는 일이 그 당시는 공식화되었다.


공산당에 부역한 가난한 농부의 한 노모는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자식이 공산당원이니 위원장 감투를 썼다가 패가망신하고, 어려운 살림에 벌금까지 물게 되었다고 한탄과 불만이었다.
김대성을 학살한 살인자는 경찰서에서 한동안 고초를 받다가 풀려났을 것이다. 모자라는 무기 값으로 얼마를 내고 풀려났는지 그 아버지를 잃은 김순철 학생은 상상도 못했다.


망자의 어린 딸 순희의 목에 빨치산이 들이댔던 비수의 쇼크로 순희의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 밤낮으로 허공에다 아버지를 불러대며 헤매고 다녔다. 한의사의 침과 약도 크게 진전이 없었다. 순희는 변산 중계로 이사 간 할머니 댁으로 가서 요양했다. 깊은 산중이라 경치가 좋았다. 공비가 있던 곳도 자연의 정화로 공기도 물도 깨끗했다. 동네 인심도 넘쳐흘렀다. 할아버지는 약초를 캐고 할머니는 정성을 다하여 약을 달여 순희를 돌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