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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6)光風直寫 카메라로 바라보기 /박정형

 


사진을 찍는다는 건
피사체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좋은 ‘멍석’


번쩍! 눈을 떴다. 으앗~ 5시50분이다. 늦잠이다. 얼굴에 물만 찍어 바르고 렌즈랑 카메라를 주워 담고 후다닥 집을 나선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피곤해서 잃어버렸던 여유… 오늘은 카메라에게 바람을 제대로 쐬어 주리라 맘 먹으며 집을 나선다. 싸부님과 치사회(齒寫會) 선배들과 함께 추적거리는 도시를 벗어난다.


목적지도 모른채 싸부님이 이끄는 대로 차로 달리기를 한 시간여. ‘뭘 찍을 수 있을까, 어떤 걸 남겨야 하나, 비 오는 풍경은 어떻게 찍는 게 느낌이 살까, 카메라에 물 들어가면 안 되는데…’ 잡다한 생각이 머리를 휘돌아 나갈 무렵 차는 주남저수지 부근 어느 연(蓮)밭에 다다랐다. 한 손으로 우산을 받치고 한 손으론 카메라를 감싸며 연잎과 내리치는 빗방울들을 바라본다. 세찬 빗방울은 연잎에 다다르자 그대로 송글송글 맺히고는 또르르 구른다. 잠시 숨을 멈춘다. 그리곤 끊어지는 셔터 ‘철컹’


돌다가 고인 물은 일렁이다 어느 순간, 연잎은 밑으로 물을 쏟아낸다. “그래 그렇게 찍는 거야”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제서야 참았던 숨을 삼킨다.
연잎의 모습에서 자신이 감당할 무게만큼만 지탱하다 그 이상이 되면 비워버리는 무욕(無慾)의 지혜를 발견하셨다던 어느 스님의 깊은 성찰만큼은 아니더라도 한 번의 셔터가 끊기는 그 순간의 집중과 긴장은 뷰파인더 안에 보이는 현상들에 대해 또 다른, 좀 더 차분한 관찰과 감상의 기회를 무뎌져가는 나에게 만들어 준다.


‘그렇지 그래, 모이면 무거워지고 무거워지면 버릴 건 버려야지, 안 그러면 부러지는 걸…’ ‘흠, 그 줄기가 휘청 휘청거리다 잎사귀와 함께 다시 솟구치는 것이 짐을 덜어 홀가분해 하는 형상 같기도 하고, 흔들거리는 형상은 또 “에이, 아까운거 다 흘렸네” 하며 툴툴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진흙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는 거 말고 또 어떤 의미를 가지나?’, ‘그런데 어쩜 저렇게 빗방울이 예쁘게 또르르 굴러다닐꼬?’, ‘음, 저걸 플래시를 이용해서 찍어보면 어떤 느낌이 날까?’, ‘방울이 맺히고 어지럽게 제각기 또르르 굴러다니다가 결국은 일렁거리며 합쳐지는 것이, 옳거니 저런게 예전에 배웠던 正·反·合의 형상아닌가? 헤겔이었던가, 변증법이. 구르는 빗방울에 웬 철학? 하하…’


뷰파인더를 통해 프레임을 잡는 짧은 시간동안 여러 생각이 머리에 맴돈다. 자의적인 ‘갖다 붙이기’이면 또 어떤가? 이쯤 되면 멋쩍은 웃음이 입가에 맺히고 몸에는 싫지 않은 긴장이 느껴진다. 뷰파인더가 눈앞에 겹쳐지면서 일상에서만 혹사당하던 내 머리, 가물어가던 가슴이 조금 깨이는 느낌이랄까. 순간 다시 셔터는 끊기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금속성의 셔터감은 ‘철컹’하는 소리로 가슴을 때린다. 후련하다. 속이 시원해진다. 내려치는 빗방울에 젖어버린 등짝도 시원하다. 한편으론 또 다른 상념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꼭 이런데 나와야 머리를 쓰나? 평소에도 좀 써라, 공부나 좀 하지, 으이그…’, ‘그러고 보니 연잎은 젖음성이 억수로 안 좋네. 완전 hydrophobic하군… 왜 저런지 알아봐야지. 그런데 얼마 전에 들어온 그 인상재는 친수성이 좋은가? 빨리 써 봐야겠군…’, ‘에잉? 왜 난데없이 이런 쌩뚱 맞은 생각을 하게 된 거지? 쯧쯧 이노무 직업병…’ 피식~ 멋쩍은 웃음이 나려는 찰라, 출발을 재촉하는 싸부님의 목소리. “광풍~ 대~충 정리하고 이동하자~.”
몇 년 안 되는 치과의사 생활에서도 사진은 없으면 안 될 부분이 되었다. 증례 발표용으로 한두 장 억지로 찍어두던 것이 언젠가 부터는 기록과 발전, 또 아주 가끔이지만 만족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 쉬운 증례든 어려운 증례든 사각의 프레임으로 잘라서 들여다보면 시선과 생각이 집중되어서인지 미흡한 부분들이 속속 보이고,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운 사진을 남기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들이 불식간에 조금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