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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치과의사문인회)-소설-]-6/25 특집- 파리채와 하이나싱의 6월 (2)/김영훈


피는 물보다 진했다
목에 칼을 들이대도 어린 딸은
아버지 있는 곳을 말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신바람 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전쟁을 시작했지만 이상과 현실은 많이도 달랐다. 공산당원 그들의 하부조직은 말이 통하지 않는 맹수가 되어갔다.
산으로 들어간 빨치산들은 입산과 하산을 반복하며 애꿎은 민간인들만 죽였다. 혹 그들에게 붙들려가 살아 돌아오면 기적이었다. 주민들은 빨치산들의 보급투쟁에 제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빨치산에게 습격당하거나 은밀히 밤중에 잠입하여 돈이나 식량을 약탈해 가면서 짐꾼으로 끌고 간 양민은 돌아오지 못하게 한 패로 만들거나, 공비들의 은신처의 비밀유지를 위하여 죽창이나 돌로 쳐 죽임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경찰 또한 낮에 지서를 탈환하였다가 불리하면 밤에 후퇴하면서 좌익으로 전향한 자나 동조자를 사살하였다. 그 때문에 살육의 현장이 다시 반복되었다. 경찰이 지서를 탈환하여 태극기를 꽂는다해도 반경 1Km밖은 순찰하기를 꺼려하는 무서운 상황이 되어 있었다.
지주와 소작인, 양반과 상놈을 떠나 무식하게 날뛰었던 남남인들의 갈등으로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학살하거나, 갯마을로 일하러가는 지게꾼도 총탄이 날아와 파리 목숨이 되었다. 노선이 틀리면 죽이는 것이다. 도덕성이 결여된, 그야말로 비도덕적인 무정부 상태였다.


밤에는 남자들의 경우 밀밭이나 콩밭에 숨어 지내기도 했으나, 밤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공비들의 칼바람을 피하려고, 줄포면 양지말에 사는 김대성씨는 아들 순철이를 데리고 친척들과 같이 부안읍내로 피난을 갔다. 도시에서 공부하다 돌아온 순철이는 텃논에 누렇게 고개 숙인 벼를 새들에게 맡기고, 또 그 아버지는 남새밭의 잡일을 만삭이 된 아내에게 맡기고, 자기들만 피난 가는 것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김대성씨의 형님이며 사촌들이 모두 피난길에 올랐으니, 그도 남아 있을 배짱은 없었다. 한동네 사는 일가 친척집에는 노인과 여자들만 남아서 집을 지켰다.
부안으로 피난 가서 애들은 친척집에 맡기고, 어른들은 군청 빈 관사에 여장을 풀고 지냈다. 김대성씨는 만삭이 된 아내와 가을 추수가 걱정되었다. 꿈에도 만삭이 된 아내의 뒤뚱거리는 모습이 보여 늘 걱정스러웠다.


김대성씨는 피난 온 건넛마을 삼양사 경리계인 이양수씨와 다시 줄포 집으로 가기로 약속을 했다. 둘이서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줄포 시내를 지나 소애고개를 넘어서는 순간, 그날 밤 줄포를 습격할 빨치산들의 선발대가 야산 솔밭에 매복하고 있다가 갑자기 소리치며 나타났다.
“거기 서라!”
둘은 전속력을 내다가 자전거를 곤두박이 쳐 버리고, 맨몸으로 달려 김대성씨는 자기 집으로 들어가 숨었다. 뒤따라온 빨치산들은 집집마다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울창한 대숲까지 훑어보았으나 허사였다.


김대성씨는 자기 집 아래채 대청 밑에 파놓은 지하실에 숨었다. 그 지하실은 농산물 저장 창고로 쓰던 곳이다. 해마다 고구마를 저장하면 썩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지하실 입구는 밖으로 나 있지 않았다. 입구는 바로 옆 곳간으로 나 있고, 곳간 벽에 덕석을 둥글게 말아 겹겹으로 쌓아 놓으면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입구였다. 빨치산들은 몇 바퀴를 돌며 찾았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자 빨치산들은 김대성씨의 큰 딸 순희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너의 아버지가 있는 곳을 대라!”고 소리쳤다. 겁에 질린 김씨 딸은 허공에 대고 “아버지! 아버지!”를 외쳤다. 그 소녀의 목소리는 허공에 메아리 칠 뿐이었다. 재차 윽박질러도 소녀는 아버지 있는 곳을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피난 간 순철이는 여동생 순희가 빨치산들에게 받는 고초를 알 리 없었다. 분명히 이 동네로 들어왔는데 찾지를 못하니, 공비들은 눈에 쌍불을 켜고 다녔다.
한편 같이 허겁지겁 달려오다 헤어진 이양수씨는 순철이의 할아버지 집으로 뛰어들었다. 이양수씨는 대청에 있는 뒤주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마침 가을 추수 전이라 큰 뒤주는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