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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치과의사문인회)-수필-]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김영호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휴일 아침이면 연구실의 넓은 창 밖으로 보이는 흐린 하늘이 운치가 있게 보여서 차 한 잔이 제법 어울릴 것 같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잎새들을 보며 문득 20여 년 전 학창 시절의 기억이 한 조각 떠오른다.
대학 시절 공부하는 의미도 모르겠고 인생의 방향 설정도 못하여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 대학로를 지나 하염없이 걷다 보니 명동 성당까지 가게 되었다. 미사가 없어서 성당 주위에는 조용히 앉아 있거나 걷는 사람들, 모이 찾는 비둘기 몇 마리가 눈에 띄는데 한 신부님과 마주쳤다.


목 부분을 두른 흰색 로만칼라가 햇살에 반사되어 빛나는 그 분과 걸으며 대화를 나누다 무심코 고민을 털어 놓게 되었다. 신부님은 길 옆에 서 있는 나무를 보시며 “학생은 이 나무를 볼 때 무엇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나?” 물으셨다. “예, 곧게 뻗은 나무줄기와 짙푸른 잎들이 아름다워 보이고 곧 다가올 가을에는 고운 단풍으로 물들어 더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부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바라보셨다.


“맞는 말이야. 거기에다가 나는 이 나무의 아름다운 생명력을 보네. 이 자리에 뿌리를 내리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큼 키가 자라고 가지를 뻗어 잎을 달고 서 있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지. 몇 배 더 큰 키로 자라나거나 더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지 않으면서, 또한 게으르게 자라 더 작고 구부러진 모습으로 있지 않고 그 고유한 생명력으로 양껏 자라 서 있는 것. 하나님께서는 어느 생명이나 가장 아름다운 순간과 성숙한 모습을 부여하셨으리라 믿네. 이 나무는 그 아름다운 순간을 맞아 자신이 하늘로 뻗을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자유롭게 가지를 뻗고 숨을 쉬고 있어서 좋아 보이는 것이지. 학생도 미래에 누군가와 만나 사랑을 나누고 무엇인가 일을 하며 살아갈 거야. 그 미래의 모습이 자네가 가진 고유한 생명력으로 맘껏 피어나 있다면 지금의 이 나무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지 않을까?”신부님은 말씀 후 나무를 다시 바라보셨다.


“우리는 이 나무 옆에 서서 가지와 잎들이 선사한 그늘의 시원함과 사이사이에 비치는 햇살의 눈부심을 같이 즐기고 있네. 자네도 언젠가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과 선물을 줄지도 모르고 그것이 인생의 의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느냐의 질문은 부차적인 문제일거야.”


햇살이 맑던 그 날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말씀을 떠올리며 지금의 내 모습을 본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또 한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 되어 이 사회에서 조그만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모습이 내 고유한 생명력으로 가장 아름답게 피어있는 것인가, 혹시 과도한 욕심으로 일관하거나 아직 더 피어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게으르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인가 자문해 본다.
또한 창밖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처럼 우리가 모여 사는 세상도 개개인의 고유한 생명력이 존중받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가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