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7 (금)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문인의 향연](수필) 세존봉에 올라보니(4) / 이병태 치과의원

세존봉사다리의 호된 벌, 모자 때문에

 

합수목부터 가파르게 오르는 등산로는 다소 험난하다. 그러나 급경사 오름길이 알맞도록 전개되고 가끔 뒤돌아서서 집선봉의 변화무쌍한 바위 세력을 보면 가쁜 숨이 곧 평정을 되찾게 된다. 이날따라 발아래 깔린 운해가 말 못할 희열을 내려주었다.
‘얼마나 더 올라야 하나’할 때쯤 훤하게 터진 허공의 저편에 비로봉이 보여 몰아쉬던 헐떡임이 순식간에 가신다.


세채동의 위 끝은 채하봉과 세존봉이 이어지는 고개이다. 고개라기보다는 준령이 맞다. 모습은 마치 여인의 앞가슴 사이처럼 오목하게 파인 곡선을 이룬다.
“저기가 비로봉, 저기쯤이 마의태자 능이 되겠군, 저기가 옥녀봉.”
“리선생 잘 아십니다. 역시 산악경력에서 산책(山冊)에 능통하니까니 그렇겠죠.”
북측 한 안내원이 대꾸한다.
한동안 사진을 찍고 오른쪽을 보니 은으로 도금한 것처럼 광채가 유별난 사다리가 하늘로 치솟아 바위에 붙어있다.
위압감마저 준다.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이제까지는 바람 한점을 못 쏘이고 올라왔다. 이것은 산세 탓이다.


‘아하, 세존봉-채하봉-장군봉-장군성-비로봉-옥녀봉으로 둘러싸인 웅장한 가마솥 모양의 계곡바람이 세존봉과 채하봉 사이 준령을 스치는 구나.’
나는 누구든지 보면 알프스를 연상케 하는 등산모인 베르그훗을 쓰고 다닌다. 여기도 쓰고 왔다. 서울서도 출퇴근길에도 쓰는 것이어서 꽤나 아낀다.


‘바람에 날라 가면 어떻게 하나.’
드디어 나는 사다리에 왼발부터 올려놓고 양손으로 난간을 잡고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해서 열 계단쯤 올랐을까 했는데 밑에서 쳐 오르는 바람은 수직바위를 스치고 사다리 계단과 난간 그리고 쇠줄을 때리고 지나면서 겨울바람처럼 세찬 소리까지 냈다.
‘아차, 모자조심!’


나는 왼손을 들어올려 모자를 누른 채 오르기 시작했다.
‘잠깐 서서 배낭을 벗고 열어서 모자를 넣고 갈까, 안돼, 벗어 들고 오르다가 실족, 아니면 배낭을 열고 닫다가 소지품을 날리거나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냥 가자.’
오른손으로는 난간을 잡고 왼손은 들어올려 모자를 누른 채 계속 올랐다. 왼쪽 어깨와 팔의 피로가 전신 특히, 무릎 위 근육에 뻐근함이 느껴졌다.


내 등산활동 산악행군 중 처음으로 일어난 증상이다.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사다리를 다 올랐다. 나는 안전하게 걸터앉을 만한 안전한 곳에서 모자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급경사의 사다리를 벌을 선 모습으로 올랐던 것이다.


세존봉사다리의 아래나 위는 고요해도 중간 부분은 언제나 강풍이 분다. 만일 폭풍우나 폭풍설이 올라치면 통제하거나 안전 고리 없이는 오르내릴 수 없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나의 세존봉사다리 첫 대면은 유별나다. 티롤모자 때문에 호된 벌을 받았다. 끝내는 기진맥진(氣盡脈盡) 직전까지 이끌어 극기복례(克己復禮)를 되뇌이게 했다. 야외에서는 꼭 모자를 쓰도록 한 어머니 생각이 났다.

 

세존봉

왜 세존이라고 이름 했을까.
과연 세존봉(世尊峯)은 어떤 봉우리이며 어떻게 생긴 산일까.
세존은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준말이다. 석가세존은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존칭이며 석가모니는 불교(佛敎)를 일으킨 성인이다.


그렇다면 이 세존봉은 불교 그 자체를 뜻하고 있다. 삐죽삐죽 수직으로 예리하게 갈라지고 그 위에 적당히 울퉁불퉁한 모습에 보는 방향과 높이에 따라 더러 부처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불심(佛心)이 지극한 사람 모두한테는 석가세존으로 보이는가 보다. 세존봉 부근이나 그 정상에 올라서도 어디 또는 아무 방향으로 앉아 예불하고 절을 해도 될 듯한 느낌도 밀려든다.
속세(俗世)와 풍진(風塵)에 살아서 참으로 건방진 생각이지만, 세존봉의 동서남북 절벽은 록클라이머들에게는 환상의 도량(道場)이다. 너무나도 넘치는 매력을 가진 암벽이다.


아주 오래 전에는 인간들이 미처 오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