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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2번째)한 번도 사용 되지 않은 틀니/김창수 원광치대 보철과 교수

 

틀니를 제작해 줄때 행복은
우리 할머니와 나 사이의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이다


사람들은 추석이면 고향에 내려가느라 분주하다. 도로 사정이야 어떻든 꼭 가야한다는 일념은 대단하다.
나에게는 고향에 가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그중 하나는 음식이다. 나의 고향은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충남 서산이다. 그 서산에서도 바닷가 쪽으로 20여분 더 들어가면 멋진 해질녘이 연출되는 대산이라는 곳이 있다. 거기서 만들어지는 음식중에서 유명한 것이 어리굴젓, 게장, 마늘 등등이 있지만 내 나름대로의 생각으로는 ‘게꾹지’가 최고가 아닌가 한다.

 

그 이름마저 생소하여 사람들은 이 음식의 기원에 관해서 ‘개가 이 음식을 먹으면 딸꾹질을 해서 만들어 졌다’는 등의 여러 가지 추측들을 하지만 ‘게꾹지’는 김치를 담그고 남은 배춧잎을 황새기젓이나 새우젓 등 각종 젓갈에 버무려 저장해 놓았다가 뚝배기에 끓일때 게장국물로 간을 맞춘 다음 밥을 짓고 나서 게꾹지를 뚝배기에 담아 아궁이에 남아있는 잔불위에 올려놓으면 밥이 뜸을 들이는 동안 뚝배기는 보글보글 끓으면 그만이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된다.

 

밥과 게꾹지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어렸을 때는 그 맛을 몰라 먹지 않다가 나이가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 객지생활에 지쳐갈 때쯤 간절히 생각나는 그런 맛이다. 배춧잎이 푹 삶아지기 때문에 이가 없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며 소화도 잘된다.
그래서 인지 우리 할머니는 밥과 게꾹지만으로 거의 평생식사를 즐기셨다.

 

어린 손자의 마음으로는 할머니의 편식이 안타까워 식사하실 때 다른 반찬을 드렸지만 항상 거부하시곤 했다. 하지만 그땐 그 이유를 몰랐다. 할머니께서 왜 그 음식만을 고집하셨는지는 한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치아를 위쪽에 한 개, 아래쪽에 한 개, 그렇게 두 개의 치아만 가지고서 살아오신 거였다. 그러니 다른 음식은 잘 드시지 못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 까지 아주 건강하게 사셨다.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쪽으로 고등학교를 가면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던 내가 방학때나 집안행사가 있을 때 시골집에 내려가면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던 할머니는 손자를 애타게 기다리다 못해 4층이나 되는 집에서 버선발로 내려와 나를 맞이하곤 하셨다. 물론 맛있는 고등어자반이라도 생기면 아빠, 동생 모두 무시하고 음식을 항상 내 앞으로 밀곤 하셨다.


할머니의 손자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깊어 서산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시절 자취를 하고 있던 내 자취방에 차비만 들고 불쑥 찾아오셔서는 “니놈 뭐먹고 사는지 영 딱혀서 내가 밥해주러 왔어야”하시며 시골집에서 들고 오신 게꾹지를 끓여 주시는 거였다. 한동안 게꾹지 덕에 배고픔을 덜 수 있었다. 그 고등학교 시절 서산서 갑자기 찾아오신 할머니께 너무 감사한다는 뜻으로 뽀뽀를 해드리다가 나는 그때서야 할머니의 치아가 두 개 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치과대학에 들어가면서 쭉 할머니 치아만 생각했다. 뭔가 맛있는 다른 것을 드시게 하고 싶다는… 그러다가 국시를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날 갑자기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았다. 시골집이 아닌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서산으로 내려갔다. 할머니는 이미 의식이 없었고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고 한다. 왜 연락을 안했냐고 부모님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의식을 잃기 전 행여나 내가 걱정하느라 시험공부를 못 하면 안된다며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배고플테니 식사를 하라고 하셨다.

 

도저히 밥이 목에 넘어갈 것 같지 않아 할머니 곁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의식이 없이 숨만 쉬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내 무릎을 밀었다. 밥 먹고 오라는 거였다. 눈물과 함께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다시 돌아가니 이젠 할머니께서 의식을 놓으신 듯 호흡도 잦아드시는 거였다. 마지막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