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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수필)세존봉에 올라보니(7)/이병태 종로구 이병태 치과의원

 


금강산과 희망

 

“엄영실 해설원을 텔레비전에서 처음 볼 때는 처녀였는데 네 살 박이 아이의 엄마라니, 눈 깜박하는 사이에 4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군.”
이 엄영실 해설원은 손꼽히는 명해설원이어서 금강산의 VIP해설에만 등장하고 있다.
“엄영실씨. 6·25전쟁 때 나는 초등(소)학교에 다녔는데 서울에서 경주로 피난해서 황남국민학교에 다녔어. 그 때 경주 토박이 예쁜 여학생이 있었는데 내 짝이었거든.”
“짝. 어머나 예뻐서 좋았겠어요.”


“그냥 짝이었을 뿐야. 좋으면 뭐해. 헤어진 지 50년이나 됐군. 오늘 뜻밖에 엄씨 성을 가진 미인 해설원을 보니, 옛 생각이 확 나는 걸.”
“박사 선생님, 가슴 속에 옛 생각이 그득하신 모양입네다. 야아 과거에 아름다운 청춘전설이 얼마나 많으신지.”
세채동 계곡을 오르다보면 이따금 하늘도 좌우 능선도 보이지 않는 곳이 있다. 너럭바위부터 세채동 능선까지 오르면서 간간히 나눈 대화여서 소중하게 기록하고 있다.


“낭만스럽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지. 그런데 그 여학생이 엄씨야. 이름은 순자였지. 눈이 동그랗고 피부는 하얗고 인형 같았는데 사실 아주 예쁘지는 않고 깨끗하게 생겼어. 눈망울은 뭔가 생각하는 듯 했는데 말을 안해. 나도 말을 못 붙였거든. 학교가 끝나면 걔네 집까지 같이 오다가 후딱 뛰어 들어가. ‘잘 가라’는 말도 않고, 그러면 나도 그냥 왔지. 그게 전부야.”
“이산가족이십네다.”
“억지로 말하자면 그런 셈인데. 서로 안찾으니까. 아냐 해설하고 안내하는 사람 엄영실이 부러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내가 40대 초, 지금부터 25년 전쯤이지. 돌아가신 정주영 명예회장께서 왕성하게 사업을 하고 계시던 현대광화문빌딩에서 치과를 했어. 그 때 내가 나이 60이 넘으면 해야지 하면서 가졌던 희망이 두 가지가 있었어요.”
“야아, 60이 넘어서도 희망이 있습네까?”
“하나는 관광가이드·등산안내·해설원이 되는 거였어, 또 하나는 내 직업과 관계있는 것인데 두 가지 다 못하고 있어요. 하늘을 보면 허전하고 바다를 보면 멀기만 한 그런 느낌뿐이야.”


엄영실 엄마해설원은 60이 넘어도 희망을 갖는 내 말에 다소 생소한 느낌을 가지는 듯했다.
“엄영실씨, 들어보세요. 사실 안내원·해설원 이런 것은 힘이 있어야 하거든.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해요. 또 이것은 내 전공이 아니거든. 그러니 내 욕심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겠지요.”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집선연봉과 세존봉 동측면과 남측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동안 집선연봉을 섬으로 만든 운해에 넋을 잃으면서 뒤로 처지고 말았다. 그녀는 북측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인사였다.


‘내가 60쯤 되었을 때 양당제도가 뿌리박게 되면 어느 한 당에 들어가서 국가도 좋고 국민도 좋으며 의료인도 좋은 의료정책 수립에 관여하려고 했던 또 하나의 희망도 던져버렸다. 바람직하지 못한 의료제도만 성하고 국민과 의료인이 깔려버린 현실이 안타깝다. 이래서 가이드생활, 의료정책정당인생활, 모두가 물 건너갔다.’
이런 나의 현재 입장을 엄영실 해설원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사사롭고 엉뚱하게 들릴 것이다. 北측 땅에 들어와서는 정치라거나 사회제도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던 초심을 되뇌이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영실씨. 지금 내가 60 중반을 넘고 있거든. 요즈음 금강산온정인민병원치과진료소에 월 2회씩 팀을 구성해서 남북을 오가는 일이 원 희망과는 거리는 있지만 그냥 그게 그러려니 하고 있어요.”
“야아. 60넘어서도 희망이 있답니까? 해설위원 하겠다 했는데 금강산이 있고, 직업적으로는 온정병원도 있지 않습니까. 됐군요.”
세존봉 꼭대기에 서 있는 내 눈에는 가물가물하게 저 아래 온정병원이 들어오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