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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단편소설) 수리부엉이(1)/김영진 프레야 영진치과의원

그날 밤에도 보름달이 중천에 걸리자 수리부엉이는 또 다시 찾아왔다. 뒤뜰 대나무밭 가운데에 높다랗게 서 있는 말라죽은 감나무 가지위에서 허여멀건 달빛을 배경으로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묵묵히 앉아 적막한 우리 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과 들은 깊은 잠에 묻히고 살바람에 비벼대는 대나무잎사귀 소리만 스산했다.


뒷간에서 돌아오다가 등골이 으스스 해진 나는 불 꺼진 방으로 숨듯이 들어와 얼른 문고리부터 걸어 잠궜다. 그리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장지문에 박힌 조그만 쪽 유리로 한참동안 부엉이를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부엉이는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늘 그랬듯이 한 식경이나 지난 후 ‘부엉 부엉’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몇 번 울고는 푸드득 날아올라 어두운 밤하늘로 잠기듯 사라져 갔다. 부엉이가 떠나간 감나무 가지는 달빛아래 은백색으로 더욱 앙상하게 빛났다.


그 시절 대나무밭 왼 켠의 사랑채 옆에 붙은 뒷간과 장독대 사이에는 두 그루의 굵직한 살구나무가 버티고 서 있었다. 이른 봄이 되어 살구꽃이 피면 꽃 그림자가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나보다 여섯 살 위였던 삼촌은 살구꽃 그늘아래에 삐거덕거리는 낡은 나무의자를 가져다 나를 앉혀놓고 제법 익숙한 바리깡 솜씨로 머리를 깎아주곤 했다.
살구꽃은 벚꽃보다 훨씬 진하지만 복숭아꽃보다는 약간 옅은 핑크빛을 띤다. 봄바람이 부는 날이면 발그레하게 상기된 살구 꽃잎들이 눈발처럼 흩날리면서 보이지 않는 굴레를 따라 저마다의 세계로 미지의 여행길을 떠났다.


문제의 대나무밭으로 올라가던 장독대 뒤 언덕배기에는 석류나무 옆에 두어 그루의 골단추 나무가 다소곳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골단추 나무는 열매를 먹는 것이 아니라 꽃을 먹는 나무였으므로 노오란 골단추 꽃들은 제일 반가운 봄의 전령이었다. 아카시아 꽃을 닮은 골단추 꽃은 향기는 없었지만 씹을수록 단맛이 오래오래 스며 나왔다. 삼촌과 나는 소쿠리 가득히 골단추 꽃을 따다가 툇마루에 앉아 사이좋게 먹어 치운다.


“오늘은 오른쪽 골단추 꽃을 땄으니까 내일엔 왼쪽 나무의 꽃을 따자!”
“삼촌, 할아버지께서 또 꽃술을 담그신다면 어쩌려고 그래?”
“아마 며칠 후면 오른쪽 것에 또 꽃망울이 많이 맺힐 거야.”


“에이, 비도 안 오는데 꽃이 또 열리겠어? 그러니깐 적당히 땄어야지. 아까 다 훑었잖아. 왼쪽 나무는 따지 말자!”
“참, 걱정도 팔자네. 할아버지가 널 혼내는 거 봤어?”
“누가 나 혼날까봐 걱정이래? 삼촌이 야단맞을까봐 그러는 거지.”
“헤헤… 내 걱정일랑 붙들어 매라. 어차피 맨 날 혼나는 거 가지고 뭘!”
“그러니까 애들 좀 그만 두들겨 패라니까.”


“야, 널 괴롭히는 ‘즘’ 놈들을 그냥 두라고? 그 새끼들 한번만 또 널 때리면 모조리 대갈통을 깨 부셔버릴 거야.”
“그래도 삼촌이 아무나 맨 날 패고 다니니까 다들 코피 터지고 부모들까지 집에 쳐들어오고 그러지. 그러니까 할아버지한테 매 맞잖아.”
“다 참아도 나를 무시하는 건 정말 못 참아.”


“난 삼촌이 할아버지한테 매 맞는 게 더 싫어. 중학생인데 왜 맞고 살아?”
“야, 내가 괜히 맨 날 혼나는 줄 아니? 다 이유가 따로 있어, 임마!”
“뭔데? 그 이유가 뭔데?”
“넌 몰라도 돼!”
그러면서 삼촌은 먼 하늘만 쳐다본다. 어쩐지 삼촌의 눈빛은 언제나 알 수없는 슬픔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진짜로 삼촌은 할아버지한테 야단맞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 허구한 날 쌈박질을 하면서 앞동네 뒷동네를 휘젓고 다닌다. 삼촌한테 두들겨 맞아 코피가 터지고 눈두덩이 부어오른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일주일에 한번 씩은 집으로 쳐들어와 소란을 피웠다. 그러면 할머니께서는 의례 예쁜 보자기에 싼 씨암탉 한 마리와 볏짚으로 정성스럽게 묶은 열 개들이 계란 한 꾸러미씩을 들려주며 달래서 돌려보내곤 하셨다.


그러고 난 후 한껏 열이 오르신 할아버지께서 몽둥이를 들고 찾아 가면 삼촌은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도망쳐 버렸다. 삼촌이 흙먼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