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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단편소설)수리부엉이(2)/김영진 프레야 영진치과의원


삼촌은 같은 학년의 중학생들보다 키는 훨씬 컸지만 덩치까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 호리호리하고 콧날이 유달리도 오똑했으며 눈이 가늘고 위쪽으로 눈 꼬리가 치켜 올려져 있어서 엄청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게다가 교복 단추는 풀어 헤치고 모자는 벗어서 꼬나들고 다니다 쓸 때는 꼭 비스듬하게 눌러써서 언뜻 보기에도 불량학생 티가 넘쳐났다. 모자챙도 직각으로 꺾어서 쓰기 때문에 옆에서 보면 삼촌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삼촌 뒤에는 늘 한두 명의 똘마니들이 삼촌 책가방을 들고 따라다녔다.


온 고을의 중학생 치고 삼촌한테 얻어맞지 않는 애가 없었다. 유달리 허약하고 싸움질도 못했던 내가 ‘즘’ 애들 같은 상것들한테 그만큼이라도 대우받던 것은 순전히 악바리 싸움꾼인 삼촌의 덕이었다. ‘남태’라는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국민학생이던 내 라이벌 녀석들은 벌벌 떨었다. 삼촌의 상대는 걔들이 아니고 걔네들의 셋째 형이었다.


우리 집 뒤뜰에 있는 골단추 나무 뒤 언덕배기에 올라서면 몇 백 평이나 되는 대나무 밭이 펼쳐진다. 대나무 밭 중간에는 높다란 감나무가 한그루 서 있었는데 감꽃이 피면 삼촌은 떨어진 꽃들을 줄줄이 실에 꿴 다음 향기 나는 목걸이를 만들어 나와 누이동생의 목에 걸어주곤 했다. 달콤한 향기를 뿜는 노르스름한 감꽃은 꼭 밑 빠진 서커스단의 중절모 같았다.
장마철이 시작되면 대밭 바닥에서는 여기저기 수 없이 뾰족한 죽순들이 솟아나온다. 우리가 오동통한 놈들만 골라 뚝뚝 꺾어오면 할머니는 껍질을 벗겨 굽기도 하고 데쳐서 나물도 무치고 된장국도 끓여 주셨다.


그러다 가을이 되면 대나무밭 감나무에는 가지마다 부러질 듯 주홍색 홍시 감들이 매달린다. 둥글납작한 보통 감이 아니라 유달리도 크고 길쭉했던 그 뾰루지 감들은 쨍쨍한 가을 햇빛을 받아 잘 익은 빨간 앵두처럼 투명하게 빛나며 나를 유혹했다. 삼촌에게 홍시를 따 달라고 하면 삼촌은 길다란 장대의 끝을 쪼갠 후 거기에 작은 막대기를 끼워 묶은 다음 홍시가 달린 가지에 끼워 비튼다. 그러면 몇 개의 감이 매달린 채로 가지째 꺾여 장대 끝에 끼워지므로 얼마든지 망가지지 않게 탐스러운 홍시를 딸 수 있었다. 나는 삼촌의 감 따는 솜씨를 칭송하면서 연신 다디단 홍시를 쪼개 후루룩거리며 빨아대지만 이에 따른 비극적인 대가는 어김없이 다음날 측간에서 치러내야만 했다.


그러다 내가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시작된 일련의 사건은 정든 대나무 밭과 우리들이 영영 이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 역시 그해 이후로 고향집을 떠날 때까지 십여 년 동안 다시는 집 뒤 대나무 밭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단 일 년 만에 감나무와 대나무밭은 갑자기 별세계처럼 전혀 다른 이방으로 돌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사건의 발단은 국민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초여름부터 시작되었다. 건너동네 친구들과 셋이서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동네 어귀를 하얀 가운을 입은 아저씨들과 하늘색 제복을 입은 순경아저씨들이 지키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인부들이 말뚝을 박고 동네를 빙 둘러가며 새끼줄을 치고 있었다.
어느 순경아저씨가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너 이 동네에 사는 아이냐?”
“네. 그런데요.”
“너희들은 어디에 사니?”
“우리들은 건너편 현동에 사는데 왜 그러세요?”
“그러면 너희들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이 동네에 사는 너만 이리 따라와!”


어리둥절하며 순경아저씨를 따라 군용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세숫대야에 담긴 불그스레한 소독 액으로 손을 씻게 하고 하얀 알약을 먹였다. 그리고 나를 집으로 얼른 들여보내주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겨우 8가구에 불과한 씨족 부락이었던 우리 동네는 전염병인 장질부사로 세상과 단절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석 달 동안이나 학교는커녕 새끼줄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었다. 이튿날에는 강제로 동네사람 모두가 우리 집 마당에 모여 라디오 뉴스를 들었는데 그 내용은 이랬다.


“요즘 도내의 일부 부락에서 법정 제 1종 전염병인 장티푸스 환자가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