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7 (금)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문인의 향연(치과의사문인회)-수필-]수리부엉이(3)/김영진


동네 어귀에는 몇 개의 작은 천막 말고도 커다란 군용천막이 세 개나 설치되었는데 하나는 순경아저씨들이 쓰고 다른 하나는 흰 가운들이 사용했다. 나머지 하나가 단체급식소였는데 묽은 흰죽에 간장과 두어 가지의 밑반찬이 한 끼 식사의 전부였다.


우리 동네의 유일한 식수원이었던 공동우물은 폐쇄되고 아침저녁으로 뽀얀 소독약이 안개처럼 온 동네를 뒤덮었다. 집에서는 일절 밥을 해 먹지 못하게 해서 단체급식소에서 나누어주는 죽만 먹어야 했다. 한 열흘쯤 지나자 현기증이 나고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너무도 배가고파 아무거나 먹고 싶었지만 집집마다 사람들이 지키고 있어서 채전 밭의 토마토나 오이 하나도 마음대로 따 먹을 수 없었다. 우리 식구들은 점점 기력을 잃고 차례로 방바닥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진짜로 병이 든 것인지, 허기가 져서 생병이 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온갖 약품과 음식물은 가끔씩 빨간 십자가를 두른 트럭에 실려 왔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득시글한 가운데 동네사람들은 하나같이 허깨비처럼 까라져 온종일 링게르주사를 달고 살았다. 처음에는 흰 가운들이 모두 의사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진짜의사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군청이나 보건소직원들이었다. 가끔씩 우리 동네의 소식이 전파를 타고 라디오로 방송되었다. 몇 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몇 명이 나았다는 내용이었다. 한편으로는 매일같이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몰려와 번쩍거리는 플래시를 터뜨려가며 즐비하게 누워 링게르를 맞는 우리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갔다.
 단체급식소에서 배급되는 식사는 한 달이 다되도록 여전히 맛없는 멀건 죽과 간장, 허연 김치, 그리고 노르스름한 닥광이 전부였다. 삼촌과 나 역시 족히 보름간은 누워있었는데 너무나 힘이 없어 일어나 앉기조차도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온종일 잠만 잤다.
눈을 뜨면 방 안의 벽지에 찍힌 온갖 무늬들이 살아서 뛰어나와 춤을 추면서 끝없는 미로로 하루 종일 나를 끌고 다녔다.


천정을 바라보면 까마득해질 때까지 한없이 저절로 높아져 간다. 눈을 감으면 빙글빙글 도는 깜깜한 회오리에 아우성치며 빨려들곤 했다.
방에서 나와 측간에라도 갈 때는 깊고 깊은 땅속 계단을 따라 지구의 중심으로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가느다란 내 팔위에는 언제나 링게르 줄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 커다란 링게르 병속에 거꾸로 꽂힌 유리대롱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연신 공기를 빨아들였다.


공동우물가에 산더미처럼 쌓이던 알루미늄 테를 두른 빈 링게르 병과 주사 줄, 주사바늘 등은 매일같이 인부들의 지게에 실려 우리 집 대나무밭에 차곡차곡 버려졌다.
동네가 격리 된지 두 달째부터는 감시가 소홀해져 알게 모르게 집집마다 밥을 해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열흘도 지나지 않아 대부분 링게르 신세를 벗어나고 단체급식소는 아무도 찾지 않게 되었다. 날이 지나면서 경찰과 흰 가운들도 거의 모두 돌아가고 몇 명만 남아 건성으로 지켰기 때문에 건너 마을의 친척들이 수없이 인사차 다녀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삼촌이 죽었다. 한밤중에 눈을 까뒤집고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채 눈도 감지 못하고 갑자기 죽어버렸다. 나를 끔찍하게도 아꼈던 하나밖에 없는 삼촌은 겨우 중학교 3학년이었던 해에 그렇게 허무하게도 우리 곁을 떠나갔다. 다음날 삼촌은 경찰들의 제지로 동네 어귀조차 벗어나보지 못하고 정든 교복을 입은 채 날근날근한 책가방을 안고 건너편 야산의 소나무밭에 묻혔다. 도저히 상상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일이 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깨끗하게 마무리되었다.


할머니께서는 삼촌이 열도 없었고 설사도 안하고 머리털도 전혀 빠지지 않았으므로 장질부사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로지 그 동안 쇠약해진 기력을 회복하기위해 온 가족이 전날저녁때 함께 끓여먹었던 피문어 죽에 급체해서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날 저녁 피문어 죽을 가족들과 함께 먹었었다. 하지만 다음날 라디오로 방송된 내용은 이랬다.
“그 동안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