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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치과의사문인회)-수필-]뇌졸중(腦卒中) 발치 환자와의 대화/박용호


중학교 삼 학년 초여름, 막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부친이 근무하시던 학교에서 청천벽력의 전갈이 왔다. 건장하시던 부친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옮겨지셨다고. 놀란 어머니는 황급히 달려가시고 삼 남매는 묵묵히 꾸역꾸역 그냥 저녁을 먹었는데 평소 같으면 서로 경쟁하며 먹던 꽁치구이가 입안에서 까칠하게 겉돌았다. 먹구름 깔린 마음으로 병원에 가니 부친은 의식을 잃고 이방인처럼 코와 입에 호스를 낀 채로 가쁜 숨만 몰아쉬고 계셨다. 다들 황망하여 할말을 잃고… 다음날 수업하다 말고 병원에 도착하니 누나가 병실에서 펑펑 울면서 나오고 나는 불길함을 느꼈다. 부친은 그날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미처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던 나이에 커다란 상실의 체험은 무의식 속에서 뇌졸중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대학에서 구강내과학을 배울 때 뇌졸중에 대한 부분은 혹시 나도 부친을 닮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에 몇 번이나 독파하게 되었다.


평소 아버지는 돼지고기와 술과 담배를 몹시도 좋아하셨는데,  비슷한 식성을 즐기시던 구강생화학 C교수님이 아버지와 같은 연세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는 평소 식생활에 유념하게 되었다. 부친이 돌아가신 그 나이 즈음이 되자 한때는 뒷목덜미가 뻐근하여 급기야는 육촌 정신과 의사를 찾아 갔었다. 나도 아버지처럼 뇌 속에 무슨 선천적인 동맥류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서 못살겠다며…, 그는 한번 뇌동맥 촬영을 해보자고 했다. 치과 일도 반나절을 제치고 진지하게 받은 검사결과는 다행히 정상으로 나왔는데 육촌이 자기도 같은 박 씨로서 뇌동맥류 유전인자를 안받은 것 같아 후련하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그 동안은 참 발치를 겁 없이 많이도 잘해왔다. 저녁에 사랑니 발치를 하기도 하고 기구로 후비다가 안 되면 재까닥 잇몸을 절개해 판막을 열어젖히곤 했으며 뇌졸중을 비롯한 어떤 전신질환자도 발치를 사양하지 않았다. 어느 선배님이 “발치 한 개 잘못하면 그 동안 평생 이 빼서 번 돈 다 물어주어야 된다”고 했는데, 지나고 보니 천우신조(天佑神助)였는지 큰 사고는 없었는데 감사한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제 돌아가신 아버지 연배가 되고 보니 구강외과를 한 명색이 부끄럽게도 슬슬 겁이 난다. 특히 뇌졸중 환자를 접하면 해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게 된다. 해주자니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의료사고가 걱정되고 안하자니 가뜩이나 쇠약한 노인네들이 그 아픈 치아 때문에 더 고생할 생각을 하면 양심이 찔린다.


뇌졸중 노인 분들, 특히 기력이 없고 말도 어눌하고 팔 다리 마비 증상이라도 있으면 의학 지식에 앞서서 죄송하지만 나도 모르게 우선 맞겠냐마는 관상부터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이 분이 돌아가실 운명은 아닌가…’ 그래서 대화를 해보는데, 직관적으로 연때가 안 맞고 발치를 감내할만한 저항력도 없어 보이는데 막무가내로 이만 빼달라고 하면 피하게 된다. “해드리고 싶지만 언제 또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질지 몰라 염려가 된다” 또는 “마취 부작용이 염려되니 응급시설이 좋은 대학병원으로 가시는 게 좋겠다”고 하면 대부분 수긍한다. 사실 대학에서도 발치 자체야 뾰족한 수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응급실로 빨리 이송조치할 수 있지 않는가.


그래서 뇌졸중 환자 분이 발치를 할라치면 아무리 건들거리는 치아라도 준비가 사뭇 거창하다. 방사선 촬영은 기본이고 혈압을 체크하고 내과에도 의뢰를 해본다. 리도카인 부분마취를 해야겠는데 상태가 괜찮겠냐고 직접 글로 써서 보내는데 요즘은 내과 선생님들도 자기들도 겁나는지 명쾌한 결론을 안내려준다. 치과선생님이 알아서 신경써서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래도 그 답변서를 차트 뒷면에 붙여놓으면 위안이 된다. 만약 의료 사고 시에 나름대로 최선은 다했다는 징표는 될 것이니까. 전신병력 기록도 세세히 직원으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고 환자 스스로 사인에(사인 못하면 지장이라도 찍게) 날짜까지 기록하게 하고 나면, 자… 준비는 끝나는데… 도포마취 꼭 하고 “하나도 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