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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소설]김영진/남양의 절벽위에 서다 (2)

<1544호에 이어 계속>


이젠 한숨 돌렸나 싶었는데 또다시 ‘쌔액’ 소리와 함께 휠이 역회전하며 순식간에 삼사십 미터나 도로 풀려나간다. 그러나 휠이 돌아가는 속도가 처음보다는 좀 느려진 것 같다.
요행히 녀석도 진로를 암초 반대방향으로 바꾸었으므로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차분하게 싸워보기로 마음먹었다.
눈의 초점을 수평선에 맞추고 심호흡으로 흥분을 가라앉히며 시나브로 힘 빼기 지구전에 돌입했다. 시간이 흐르며 마구잡이식 격돌은 조금씩 뜸해졌다. 사실 내가 지치는 만큼 그 녀석도 조금씩 지쳐갈 게 분명했다.


이럴 때 ‘스콜’이라도 시원하게 한 번 퍼부어주면 좋으련만, 새파란 하늘아래 수평선에 걸려있는 뭉게구름만 오월의 장미처럼 석양에 눈부시다.
녀석과 격전을 시작한지 벌써 30분이 지났다. 낙조에 물들어가는 저녁하늘에 붉은 노을이 깔린다. 감청색 남태평양 외로운 섬에 아름다운 황혼이 진다.
이 괴물은 아직도 벼랑아래 100미터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를 농락하는데, 어떻게 생긴 놈인지 아직까지 얼굴도 보지 못했다. 이제는 이 녀석이 아예 깊은 곳으로 대가리를 쳐 박나 보다. 낚싯대가 연신 ‘욱, 욱’ 소리를 내며 U자 형태를 반복 연출한다.
이렇게 시간을 오래 끌다가는 상어의 공격을 받기 십상이다. 상어는 낚시에 걸린 고기를 쉽사리 공격해서 반 토막만 남기고 몽땅 잘라가곤 한다.


나는 나대로 죽을 맛인데 ‘죠이’와 ‘페트리’는 서두르라며 계속 안달이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땀은 비 오듯 하는데 시야까지 아른거린다. 내가 버틸 수 있는 노동의 한계를 넘겨가는 것 같다.
사실 이곳에서의 암벽낚시를 꿈꾸어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이판’섬으로 트롤링낚시를 다니던 이삼년 전부터 이 섬의 암벽낚시에 관한 솔깃한 소문을 자주 들었다.
국내 잡지에도 여러 번 소개된 적이 있는 이곳의 암벽낚시는 남양 거물들의 힘찬 박력과 다양한 어종, 그리고 뛰어난 경관이 함께하므로 프로낚시꾼들에게는 평생 한번은 꼭 와 보아야 할 환상적인 낚시터다.


배에서 하는 트롤링낚시는 모터보트에 낚싯대를 꽂고 실리콘으로 만든 가짜 미끼를 수면위로 끌고 다니면 고기가 따라오며 미끼를 공격한다. 고기가 낚시에 걸리면 전동 릴을 사용하여 가까이 끌어온 후 쇠갈고리가 달린 ‘갸프’로 찍어 배에 올리면 그만이다.
보통은 참치종류를 노리게 되는데 어제 ‘사이판’에서 ‘티니안’ 쪽으로 나갔던 트롤링낚시에서는 참치 축에 끼지도 못하는 5kg급 ‘옐로핀 튜나’ 몇 마리와 맛없는 10kg급 ‘레인보우피시’ 한 마리를 잡았을 뿐이었다.


출항을 앞둔 선장들은 하나같이 큰소리를 쳤지만 돌아올 때의 어획고는 대부분 형편없었다. 선장의 실전능력과 변명실력은 언제나 반비례했다.
트롤링낚시를 나갈 때마다 그토록 염원하며 꿈에 그리던 청새치, 즉 ‘블루마린’과는 아직 한 번도 조우해 보지 못했다.
 제대로 자란 ‘블루마린’은 한 마리가 100kg이 넘는다. 500kg에 이르는 녀석도 있다. 뾰족한 주둥이 길이만도 1m가 넘는다. 트롤링낚시를 하다가 그 주둥이에 꿰어져 비명횡사한 낚시꾼이 한둘이 아니다. 블루마린은 그 생김새도 준수하려니와 힘 좋고 맛좋은 고급 어종이어서 큰 것은 값이 수천달러에 이른다.


‘옐로핀’은 주변에 흔해빠진 싸구려 참치통조림을 만드는 어종인데 잡자마자 급냉동이 필요하므로 서울까지 가져갈 수 없어 현지에서 교민들에게 그냥 나누어주곤 한다.
내가 낚시를 즐기게 된 동기는 순전히 지금은 없어진 그 옛날 고향집 앞의 방죽 때문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방죽에 가서 대나무에 바느질실을 묶은 멍텅구리낚시로 송사리를 낚았으며 방죽의 물이 빠지면 맨손으로 민물고기들을 더듬어 잡았다.
저녁때 개구리를 꿴 몽둥이 낚싯대들을 방죽가에 몇 개씩 던져놓았다가 이튿날 건져 올리면 낚시마다 멍청한 가물치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뱀장어 낚시도 꽤나 원시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