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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소설]김영진/남양의 절벽위에 서다 (4)

 


<1548호에 이어 계속>


등푸른 생선인 근육질의 부시리가 물속에서 순간적으로 뿜어내는 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도 할 수 없다. 정면대결로는 아무리 강한 낚시장비를 사용한다 해도 이겨내기 어렵다. 힘으로 맞대결하면 낚시 바늘이 부러지거나 목줄이 끊어져 거의 다 놓치게 된다.
사실 1m급 녀석을 두어 마리만 끌어내면 어지간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완전녹초가 되어 더 이상 낚시를 계속하기 힘들다. 더구나 부시리 낚시는 조류를 타야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되는 것이 아니고 기껏해야 하루에 한 두 시간밖에 기회가 주어지질 않는다.
그것도 날씨와 파도, 물 때 등이 맞지 않아 세 번을 출조해야 겨우 한번쯤 대결을 벌일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선상 낚시는 그래도 깨끗하고 편안한 편이어서 귀족낚시 축에 들지만 오늘 여기서 시도하는 ‘바텀’낚시는 정말 야만스럽고 무식한 낚시이다.
보통 배낚시에서는 3호대로 5kg급을, 5호대로는 10kg급을 노릴 수 있지만 지금 사용하는 300호대는 예전에 한 번도 써 본적이 없는 중장비이다.  낚시 바늘이 너무나 커서 어지간한 잡고기들의 입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는다.


송아지 코뚜레만한 낚시 바늘에 목줄은 코팅된 ‘스테인리스 스틸 와이어’, 본 줄은 150파운드 ‘케블러’, 미끼로는 커다란 식용냉동고등어 한 마리를 통째로 꿴 다음 300그램짜리 납덩어리를 달아 깊이 30미터가 넘는 해저에 쳐 넣는다.


10미터가 넘는 깎아지른 절벽위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마지막이다. 집채만 한 파도가 들이치는 암벽에서 구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이 섬에 오기 열흘 전에도 필리핀인 낚시꾼 한명이 고기와 씨름하다 절벽에서 떨어져 실종되었다는 으스스한 소식도 들었다.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벌이는 일행모두가 노리는 타깃은 오직 단 한 마리다. 내가 고기를 걸자마자 ‘죠이’는 재빨리 제 낚싯대를 걷어주었다. 만약 욕심을 부리다가 줄이 서로 엉키면 그 순간으로 끝이다. 이러한 괴력 앞에 겹쳐진 줄은 곧바로 터지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녀석을 끌어내거나 아니면 떨어뜨릴 때까지 ‘죠이’와 ‘페트리’는 한낱 조수이자 관전자일 뿐이다.
아마도 내가 요행히 이 녀석을 끌어낸다면 장정 셋이서 이 한 마리조차도 제대로 운반하거나 다 처치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므로 아쉽지만 즉시 철수하게 될 것이다.
서로 끌고 당기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힘이 모두 빠져버려 온몸이 물에 젖은 솜덩이처럼 푸석푸석해진 것 같다.


이 녀석을 뭍으로 끌어낸다는 것은 점점 현실과는 거리가 먼 꿈속의 일처럼 느껴졌다.
잠깐 주저앉아 물이라도 좀 마시고 싶었지만 녀석은 단 1초도 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 만일 한 손으로만 낚싯대를 잡고 딴 짓을 하다가는 어느 순간에 낚싯대를 빼앗겨버릴지 알 수가 없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마무리를 해야 될 텐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이 사라져간다. 입안이 바짝바짝 타오르고 흐르는 땀으로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다. 어렵사리 10미터를 감아 놓으니 다시 20미터를 차고 나간다.


‘죠이’는 이 녀석이 노는 모습으로 보아 거대한 도미종류가 틀림없다고 옆에서 나불댄다. 일견 맞는 소리였다. 도미종류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무지막지한 힘으로 끝없이 내리박는 고기란 없다.
한국엔 아직 한 번도 와 본적이 없다는 미국 ‘아리조나’ 주의 현직경찰관이다. 휴가를 맞아 낚시를 즐기러 ‘사이판’ 섬까지 혼자서 왔다는 칠척장신이다. 완전한 백인은 아닌 것 같고 약간의 ‘히스패닉’ 계 혼혈 분위기다.


그를 사이판의 한 낚시점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것이 어제 밤의 일이다. 그리고 오늘아침  ‘세스나’ 경비행기까지 전세 내어 사이판 국제공항에서부터 한 시간을 날아 여기까지 왔지만 내가 고기를 걸자마자 정작 제 낚싯대는 접어두고 점잖게 관전만 하고 있을 뿐이다.
‘사이판’ 현지인인 ‘페트리’는 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