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7 (금)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문인의 향연/소설]김영진/남양의 절벽위에 서다 (5)


<1550호에 이이 계속>


이 녀석과 맞붙은 지 한 시간이 지났다. 녀석도 이젠 지쳤는지 줄이 조금씩 모아진다. 약간 비겁하긴 하지만 잠깐씩 낚싯대 끝을 허리 높이의 바위틈에 살짝 의지하고 ‘릴링’을 해도 될 만큼 상황이 좋아졌다.


‘죠이’도 벼랑 끝에 머리를 내밀고 계속 수면을 응시한다. 하지만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잔영 외엔 아무것도 보일리가 없었다. 녀석은 아직도 50미터나 저쪽에 있었던 것이다.
살금살금 감아내다가 다시 기습을 받았다. 쌔-앵하고 휠이 역회전하며 낚싯대 마디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이젠 드랙을 더 이상 조일 힘도 없었다.
녀석이 멀리서 파도위로 솟구치며 수면에 하얀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리곤 마치 어뢰처럼 물살을 가르며 순식간에 까마득히 내빼 버린다. 사정없이 줄이 풀려나가는 것을 보고 그냥 풀썩 주저 앉아버리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이렇게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후둘거리는 상태에선 도저히 승산이 없을 것 같았다.


줄을 도로 풀어주다니 “도대체 뭐하는 거야”하며 뒤돌아보는 ‘죠이’를 보고 내 체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이젠 그만 낚시꾼의 자존심을 꺾을 때가 되었나 보다.
팔짱을 낀 채 황혼에 물든 수평선을 배경으로 조각 작품처럼 서 있는 ‘죠이’의 우람한 팔뚝을 부러움 반, 시기심 반으로 훔쳐보다가 두 눈 딱 감고 낚싯대를 ‘죠이’쪽으로 뉘었다.
“아임 쏘리. 헬프 미, 플리즈. 헉헉~”


그러나 역시 그는 나보다 훨씬 더 멋진 낚시꾼이었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남 저음 목청으로 되받아 친다.
“노 프로블럼…유 캔 두 잇!”
머시라? 낯 뜨겁게 시리… 그래, 좋다. 어디 한번 해보자! 다시 전력으로 ‘릴링’을 시작했다. 우우 욱~핑핑 핑~ 낚싯대와 낚싯줄이 함께 울어댄다. 에라 모르겠다, 너나나나 이젠 죽기 아니면 살기 둘 중 하나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낚싯대를 뒤로 젖히며 있는 대로 감아올리는데 갑자기 탄성이 터졌다. 드디어 놈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커다란 몸집을 비스듬히 옆으로 누이고 허여멀건 배를 위로 드러낸 채 떠오른 녀석의 정체는 예상대로 도미의 일종인 ‘아까다이’.
우리말로는 참돔의 한 종류인 홍 돔이다. 일본사람들이 특히 좋아한다는 고급 횟감이었다.
이젠 절반은 성공이다. 놈에게 바람을 잔뜩 먹여 힘을 빼놓고 로프에 매단 갸프를 낚싯줄에 태워 내려 보내 걸어 올리면 되는 것이다. 깊은 바다에서 올라온 녀석들이 공기를 들이마시면 부레가 부풀어 올라 더 이상 맥을 추지 못하게 된다.
파도에 따라 낚싯대를 올렸다 내렸다하며 녀석에게 바람을 먹이면서 천천히 절벽 밑으로 어프로치 시켰다.


‘죠이’가 절벽 끝에서 낚싯줄을 한 손으로 잡고 ‘갸프’를 걸었다. 커다란 네발 갈고리가 낚싯줄을 타고 이미 어두워진 수면 위로 쭈~욱 내려간다. 옆에서 ‘랜턴’을 들고 로프를 풀어주던 ‘페트리’가 갈고리를 끝까지 내려 보낸 다음 힘차게 위로 올려 챘다.
덜커덕하며 갈고리가 녀석의 아가미에 꽂혔다.
와! 하는 환호성도 잠깐, 우당탕하며 파도를 박차고 그녀석이 다시 물속으로 대가리를 처박는 순간 지금까지 그토록 잘 버텨주었던 낚싯대의 허리가 절벽 끝에 걸리며 ‘따악~’ 하고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낚싯줄 조차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지만 원줄의 임무는 이미 로프에 바톤 터치 된 다음이었다.


로프를 잡고 있던 ‘페트리’의 가녀린 몸집이 벼랑 끝에서 휘청거린다. 나는 부러진 낚싯대를 내던지고 ‘페트리’의 허리를 뒤에서 얼른 감싸 안았다. 그때서야 간신히 자세가 안정된 ‘페트리’가 조심스럽게 로프를 ‘죠이’에게 넘긴다.
내가 재빨리 뒤로 돌아가 ‘죠이’의 벨트를 잡고 버텨주자 중심을 잡은 ‘죠이’는 절벽 끝에 스타트 자세로 꿇어 앉아 로프를 조금씩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정말 엄청난 무게였다. 10여 미터 절벽이 이렇게 높을 줄이야… 로프를 끌어 올리는 ‘죠이’의 팔뚝엔 굵은 핏줄이 서고 송글송글한 땀방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