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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소설]김영진/남양의 절벽위에 서다 (6)

 

<1553호에 이어 계속>
‘죠이’와 ‘페트리’는 선명한 코발트빛 예쁜 눈썹에 걸맞지 않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아가미를 벌떡거리는 그 녀석의 머리위로 허리를 굽히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완전 녹초가 되어 온 몸이 축 늘어진 채 빈 물병을 베개 삼아 아직도 지열이 다 가시지 않은 거친 용암위에 길게 뻗었다.


아뜩 잠이 들었다가 무심코 눈을 떠 하늘을 보니 찬란한 적도의 별들이 우르르 달려든다. 서울의 하늘보다 백배나 많은 영롱한 별들… 때 묻지 않은 남태평양의 창공에서 영겁의 세월을 달려온 무수한 별빛들이 유리조각처럼 부서져 내린다.
여기는 ‘미크로네시아’ 북단의 ‘마리아나제도’. ‘사이판’에서부터 시작하여 세 번째에 위치한 ‘로타’ 섬이다. 멀리 네 번째 섬인 ‘괌’의 자태가 아스라이 보인다.


이곳 ‘로타’는 매년 세계 암벽낚시대회가 개최되는 태평양전쟁의 격전지 중의 하나다.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바닷물과 청명한 하늘이 어우러지는 우리나라의 완도만한 작은 섬이다. 대부분의 해안선이 발 붙일 곳 없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요새이다.
섬의 동쪽으로는 신비로운 ‘웨딩케이크 마운틴’을 시작으로 해변을 따라 늘어선 야자수와 은빛 백사장에 둘러싸인 고요한 ‘로타 만’이 남국의 파라다이스처럼 평화로운 곳이다.
‘로타’공항 주변에는 아직도 태평양전쟁 때 격추된 비행기들의 잔해가 널려있고 섬 곳곳에 거대한 일본군 대포와 지하 동굴로 된 진지들이 즐비하다. 동굴 속을 걸어 다니면 아직도 당시의 포탄이 발에 채일 정도다.


1944년 초 태평양전쟁이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사이판’, ‘티니안’, ‘로타’, ‘팔라우’등 남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 섬들로 전선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섬들은 미군의 일본본토 공습기지로 활용될 수 있는 인근 ‘괌’이나 ‘오끼나와’를 방어하기 위한 사선이었다.
결국 일본군은 그 유명한 ‘사이판옥쇄’에 이르게 되고 곧 인근의 ‘팔라우’ ‘티니안’ ‘로타’등도 차례로 미군에게 점령되어 갔다. 이로 인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일본 본국의 ‘도조’ 내각이 총사퇴하고 후로 일제는 패전의 길을 걷게 된다.


남양군도 중의 하나로 일제의 사탕수수 재배지였던 이곳 ‘로타’에 주둔했던 일본군과 조선 노무자, 군속들도 미군의 혹독한 공격으로 대부분 남방의 뜨거운 이국땅에서 고달픈 생을 마감해야 했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그렇게 강제로 끌려와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노예처럼 혹사당하다가 이름 없이 스러져간 우리 선대들이 그 몇이었던가?
아직까지도 이 섬의 곳곳에 널려있는 대포와 요새, 탄흔으로 얼룩진 격전의 흔적들에는 가족들과 생이별한 채 나라 잃고 고향 떠나 짐승처럼 부려졌을 조선인들의 한숨과 땀과 눈물이 녹녹히 스며있다.


지금 우리 앞에 저렇듯 눈이 시린 아름다움으로만 다가오는 남빛 수평선도 전쟁 중에 헌 신짝처럼 버려졌던 그들에게는 한스러운 생사의 경계선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였고 패자였는지 혼돈스러운 현실이다. 승자는 지구를 지배하는 초강대국이 되었고 패자는 세계를 주름잡는 경제대국이 되어 밀월을 즐기고 있다.
어느 누구도 사라진 속국의 민초들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일본인이 아니라서 ‘야스쿠니’신사에 봉안되지도 못하고 고국의 국립묘지에조차 갈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죠이’는 전승국 미국의 시민이다. 폴리네시안 ‘페트리’는 조상 대대로 부초처럼 돌아가며 점령국들을 섬겨야 했다. 그렇다면 일본의 노예였던 조선인들은 잠시나마 점령군의 지위에라도 올라보았었던가?


유수처럼 스쳐간 역사의 뒤안길에서 목적도 보상도 없이 희생을 강요당했던 그 억울한 영령들을 아무도 어느 곳에서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오로지 ‘로타’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철수를 앞두고 낚시여장을 정리하는 일행의 등 뒤에서 수평선위로 막 떠오른 창백한 만월이 한 줄기 파도와 어우러져 이 섬의 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