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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수필)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그대에게/김영호 삼성의료원 교정과 교수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하는, 다소 진부하고 오래된 담론을 끄집어내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결혼하여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간혹 재롱을 떠는 시간 외에는 금지된 일들만 골라서 하거나 조금만 엄마 눈을 벗어나면 딴 짓을 하곤 하여 어느 집이나 ‘하지 말라’는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 같다. 클수록 부모 마음고생을 시켜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이 절로 나온다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단지 성장 중이라 완전치 않아 말을 안 듣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사람의 속성이 악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며 주위를 둘러보면 어른들의 세계는 더 말을 안 듣는 사람이 넘쳐나고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일까?


자연의 법칙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 그러니까 언뜻 이해하기에 무질서가 증가하는 쪽으로 진행을 한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책상 위의 유리컵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깨져서 어지럽게 조각들이 나뒹구는데 이 순간 반대로 조각이 모아져서 단정한 모습의 컵이 되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장난감을 늘어놓거나 사춘기의 남학생의 방이 엉망으로 늘어져 있는 것, 그리고 결혼하고 보니 신랑이 양말을 아무데나 던져 놓고 휴일이면 소파에서 널브러져 멍청히 TV를 보는 일들도 무질서가 증가하는 현상이므로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인간이 이룬 사회에서도 적자생존의 원칙이 상당 부분 지배한다는 것을 성인이 된 사람들은 잘 안다. 밀림의 사자 무리가 초식 동물 중 늙거나 어려서 약한 놈을 달려들어 뜯어 먹는 장면이 잔인하거나 징그러운 것이 아닌, 당연한 자연의 법칙이라면 개인간의 관계나 나라, 민족간의 관계에서 잡아먹히는 상황이 수시로 생기는 것 또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자식들을 돌보는 모정은 어떠한가? 이 역시 많은 종류의 동물들도 새끼들을 보호하므로 자연스러운 일이지 선하거나 악한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사랑, 순수한 마음, 또는 게으름과 방종, 그리고 마음에 분노와 적대감을 지니게 되는 것 등은 선한 일인가, 악한 일인가, 아니면 자연스러운 일인가? 생각해 보면 질문은 끝이 없다.  


어쩌면 인간은 마음 속에 선과 악이 섞여 있을지 모른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러한 인간의 속성에 대한 이해와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통찰을 얻는 것이 아닐까. 조직 사회에서 주위 사람들과 상황에 대한 배려 없이 날뛰며 지내는 동료나 상사를 대하게 될 때 흡사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지만 소가 있으면 그 힘으로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는 지혜로 바라보면 흥미롭기도 하고 애처롭다. 구유 안에 있는 ‘문제의 소’가 미친 듯이 드나들 때에 구경하는 심정으로 바라보라! 영화가 따로 없다.      


이 세계는 선한 부분과 악한 부분이 공존해있을 것이나 정작 문제는 세상이 온전히 선해야 한다거나, 또는 온전히 악하다는 맹신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더 문제일 수 있겠다. 한 민족을 다스리는 정치가 100% 성악설에 기반을 둔 규제 우위의 체제를 지향하게 될 때 생기는 부작용을 우리는 짐작하고 있다. 운이 나쁘게 인간의 악한 속성이 맹위를 떨치는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그대에게 세상사는 지혜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