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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수필]이재호/塗 金 (도 금)


벚꽃이 떨어진다.
네다섯 살의 아이가 손을 벌려 꽃잎을 받는다.
봄 햇살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살결. 꽃잎보다 예쁜 두 손.
떨어지는 꽃잎을 쫓아 벌이 날아든다. 조금 전까지 하이얀 입술과 달콤한 꿀로 유혹하던 꽃잎이 땅으로 떨어지는 의미를 모르는 벌은 꽃잎을 쫓는다.
“얘야, 벌에 쏘일라.”


검고 주름진 두 손이 아기의 얼굴을 감싼다.
막내아들이 낳은 손자일까? 아니면 증손자일까?
검고 주름진 손은 흑과 백으로 대비된다.
아이의 찬란한 살결과 귀여운 웃음소리에 취해 할아버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얼굴을 간질이는 봄바람에 까르르 웃는 벚꽃의 웃음소리. 춤추는 듯이 떨어지는 꽃잎. 그리고 할아버지의 검고 주름진 얼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벚꽃은 낙화도 아름다운데….’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고릴라가 사는 산속에 버려진 적이 있었다. 고릴라들은 젖을 먹이고 그 아이를 잘 키웠다. 그 예쁜 모습에 취하여 서로 젖을 먹이려 했다는 연구가 있다. 어른들이 그 고릴라 영역을 접근했을 때 고릴라들은 거칠게 공격했다.
모든 동물들의 새끼들은 귀엽고 아름답다. 강아지도 그렇고 병아리도 그렇고 쥐새끼도 귀엽다.
식물들의 새싹들도 아름답다. 새끼들이 귀엽고 아름다운 것은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방법이라는 것이 동물학자들의 견해다. 방어 능력이 없는 새끼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귀여운 모습, 사랑하고 싶은 예쁜 모습뿐이라는 것이다.


진화의 선택이며 위장이며 보호색이라는 것이다.
그 할아버지도 네다섯 살의 귀여운 모습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의 때가 묻어 피부는 검어지고 얼굴은 주름지어졌지만 저 손자의 귀여운 모습 위에 세월의 이끼가 쌓인 것뿐이다.
자연은 보호를 철회한 것이다. 깊고 아픈 배려에 나온 자연의 선택일 것이다.
가을 오후.


녹차를 들며 스님에게 봄날의 느낌을 이야기했다.
아이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벚꽃은 소멸도 아름다웠는데 할아버지의 검고 주름진 얼굴에서 세월의 허무를 보았고 삶의 유한성의 슬픔 같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금도금을 한 쇳덩이를 금덩이로 속아 많은 돈을 주고 샀다면 어리석은 사람이겠지요. 아름다움과 추함은 본질이 아니고 현상일 뿐이지요. 환영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오동잎이 뚝뚝 떨어진다.
검게 변한 낙엽 위로 찬바람이 분다.
봄바람에 하늘하늘 춤추며 떨어지던 벚꽃은 검은 흙으로 변한 지 오래다.

 

※ 환영 - 그래도 아이의 찬란한 피부는 기쁘고 꽃 같은 두 손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