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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수트로 돌아온 가을여자

정제된 아름다움 포인트
완벽 재단 테일러링 유행
팬츠 수트 강렬한 세련미

 

‘인퍼머스(infamous)’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트루먼 카포티의 삶을 다룬 이 영화가 그의 삶을 다룬 또 다른 영화이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작인 ‘카포티’ 보다 더 매혹적인 단 한가지 이유는 전설적인 패션 에디터 다이애나 브릴랜드를 비롯해 1940년대 사교계를 풍미했던 여성들의 완벽한 옷차림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옷차림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옷차림을 보여주는 이는 시고니 위버.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스타일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베이브 팔레이 역을 맡은 탓이다. 미국 CBS 방송국의 창립자 윌리엄 팔레이의 부인이자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16년 동안 단 한해도 빠지지 않고 ‘세계의 베스트 드레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는 그녀는 트루먼 카포티의 표현을 빌자면 “너무 완벽하다는 단 하나의 결점만 빼면 정말로 완벽한 여자"였다. 얼마나 완벽한 여자였냐 하면, 자신의 장례식에 쓸 와인 리스트와 손님들에게 대접할 음식 레시피까지 완벽하게 점검한 끝에야 눈을 감았을 정도였다. 그녀는 옷차림에서도 흐트러짐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그녀와 절친한 사이였던 또 한 명의 스타일 아이콘 슬림 키이스가 남긴 말은 패션계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베이브의 셔츠는 구겨지지도 않는다."


베이브 팔레이 이야기를 이토록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올 가을 클래식 무드가 부활하고 매니시 룩이 유행하면서 수트의 중요성이 부쩍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트란 원래 일상 생활에서의 가장 완벽한 ‘성장(盛裝)" 아이템이 아니던가. 게다가 올 가을엔 수트 중에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재단된 테일러링 수트들이 크게 유행할 전망이다.


올 가을에 유행할 수트를 디자인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크게 두 가지 스타일로 나눌 수 있다. 허리는 잘록하게 들어가고 재킷의 허리 아래 부분(페플럼)을 살짝 퍼지게 디자인한 1940년대 스타일의 스커트 수트와 차가운 느낌이 들 정도로 날카롭게 재단된 재킷과 군더더기 없이 똑 떨어지는 팬츠가 짝을 이룬 팬츠 수트. 이 두 스타일은 세계 패션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여러 디자이너의 패션쇼에 일제히 등장하면서 눈길을 끌었는데 스커트 수트 쪽이 포멀하고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반면, 팬츠 수트는 포멀하지만 도회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더 강하게 뿜어낸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수트가 어떤 디자인이며 어떤 소재로 만들어졌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옷이 실력 있는 재단사가 만든, 잘 만든 수트인가" 하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올 가을 수트 차림에서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 ‘정제된 아름다움을 뿜어내야 한다"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잘 만들어진 수트"를 그 가치에 걸맞게 소화하고 싶다면 수트를 제외한 나머지 액세서리들도 그 격에 맞는 것이어야 하며, 정확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것. 지난 몇 시즌간 ‘옷차림의 강약을 조절한다"는 명목 하에 허용됐던 갖가지 트릭들-로맨틱한 원피스에 해골 원피스를 매치한다든가 하는-은 이번 시즌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장신구들은 옷과 어울려야 하며,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베이브 팔레이 스타일이며, 그랬을 때 비로소 ‘정제된 아름다움"이 탄생한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수트를 가리켜 갑옷이라 하고, 때로는 명백한 의사 표현에 비유하며, 때로는 입은 이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까지 일컫는다. 그들에게 수트는 단순한 옷의 수준을 넘어 다양한 메타포로 기능하는 셈이다. 그런데 여자들의 수트는 그동안 어디에 가 있었나? 이제 다시금 수트를 차려 입을 때다. 어쩌면 우리는 미니 드레스의 간질간질한 애교와 데님 팬츠의 변화무쌍함에 빠져 있느라 너무 오래 수트를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