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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소설]땅과 바다의 어름 (2)/신덕재


잠포록한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차츰 퍼져서 아동 그려지기 시작했다. 서리병아리 같은 그는 추레해 보이는 군인 방한복을 입고 손을 뒤로 깍지 끼고서 힘없이 청량산으로 향했다.
돌들이 사방으로 흩뜨려진 비탈에는 나무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어쩌다 남은 소나무도 옆가지는 하나도 없고 무당 집 솟대 모양 꼭대기에 솔가지 하나가 달랑 붙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삭정이와 솔가리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몇 안 되는 소나무 밑동을 쳐서 땔감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는 낫을 몇 바퀴 돌리다가 밑동만은 자를 수가 없어서 나무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할 일 없이 그는 바위에 걸터앉아 별장을 내려다보았다.
별장은 왜정시대에 일본 사람들이 청량산 중턱에 지은 집으로 지금은 피난민들이 벌집 모양으로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사는 곳이다. 전쟁으로 인해 퇴락은 하였어도 집 없는 피난민들에게는 둘도 없는 안식처이다. 그러나 피난민들이 우글대던 그 당시에 방 하나 차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이 그는 다리 덕분에 안악댁의 옆방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는 옹진지구에서 빨갱이들을 때려잡는 군번 없는 유격대였다.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고, 인천 앞 바다에 있는 병원선에서 치료를 받다, 휴전이 되고, 병원선이 철수하는 바람에 그는 사이비 상이용사가 되었다.
유격대 생활을 할 때 그는 이렇게 믿었다. -전쟁에서는 자연의 파괴와 인간성의 말살이 필연적이고 당연한 행위라고-그러나 그가 다리에 총상을 입고 휴전이 되어 자연인으로 돌아 왔을 때 그는 자신의 지난 과거가 얼마나 어리석고 우매 하였는가를 깨달았다.
옳다고 생각하며 파괴한 산하는 이제는 그에게 굶주림과 헐벗음을 갖다 주었고 정의를 위해 행한 그의 살상은 그에게 불구자의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전쟁의 피해를 생각하다가 아직까지도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고 고고히 서 있는 장고개의 큰 소나무를 생각해냈다.
그래, 전쟁이 모든 자연과 인간을 파괴하고 말살한다 하더라도 이를 이기고 살아남는 것이 있다.
바로 이 큰 소나무가 초연(炒煙)의 포화 속에서 모든 것이 죽어 가고 사라져 가도 살아남아 전쟁의 허구성과 잔인성을 고발하고 있다.


이 큰 소나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행운이 아니고, 땅속 깊숙이 박혀 있는 뿌리의 근원에서부터 솔잎 끝까지 이어지는 자생의 힘에 의한 것이다.이는 삶의 정수이며 자연의 섭리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그는 벌떡 일어나 장고개의 큰 소나무로 향했다.
큰 소나무는 정이품 소나무의 기품과 당 나무로서의 자태가 함께 어우러진 소나무이다.
밑동 아름은 두 팔이 넘고 세자 높이에 두 가지가 나와 있어 한 가지는 수평으로 뻗어 땅 너머 바다를 향하고 있고, 다른 가지는 40도 각도로 비스듬히 청량산 너덜겅을 향해 있다.
멀리서 보는 큰 소나무의 모양은 지체 높은 선비가 수십 년 동안 정성 들여 다듬은 비낀 줄기와 문인목줄기가 함께 어우러진 소반 위의 분재와 같았다.


그는 큰 소나무 밑 바위에 걸터앉아 재복이가 언젠가 양키로부터 얻었다고 하면서 그에게 준 낙타 그림이 그려 있는 카멜 담배를 방한복 위 주머니에서 꺼내 물었다.
카멜 담배는 담배를 빨 때 봉초 담배보다 담배 티가 입 속으로 들어오지 않아서 좋았다. 순하긴 해도 봉초처럼 구수하지는 않은 카멜 담배를 한 모금 빨아 내 뿜었다.
그 연기 너머로 오 단장네 쓰레기장이 보였다.
서북 청년단 단장이었다고 떠벌이는 오 단장은 깜둥이 부대의 쓰레기장과 부모 잃은 아이들의 모둠자리인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다.


쓰레기장에는 이상한 냄새가 있다. 뭐가 썩는 냄새 같으나 우리네 두엄 냄새가 아니고, 시큼한 냄새 같은데 우리네의 김치 냄새도 아니다. 쾌쾌한 냄새 같으나 우리네의 새우젓이나 황새기젓 냄새도 아니다. 아마도 그 냄새는 우리네에 없는 색다른 냄새다.
그리고 쓰레기장에는 꿀꿀이죽이 있다. 무미하고 담백하나 입 속에 들어가 침과 몇 바퀴 어우러지면 달고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