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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소설]땅과 바다의 어름 (3)/신덕재

 

 

 

 

잠록하던 날씨가 검기울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앞 고섶이 안보일 정도로 세차게 눈이 휘날렸다.
꾸부정한 자세로 다리를 절면서 그는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그가 꿀꿀이죽 한 깡통을 얻어 들고 별장 고샅어귀에 들어서니 안악댁의 고함 소리가 질펀했다.
“이 몹쓸 놈의 아새색기가 사람이 될라고 하는 긴가 안 될라고 하는 긴가!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총알은 어데메 써 먹을라고 줘 오는 기가, 줘 오기를!
국을 끓여 먹을래? 죽을 쑤어 먹을래?!
어데메 말을 해 보라우야, 이 아새색기야!


당최, 될 아새색기는 떵닢부터 알아본다고 했는데 이놈의 아새색기는 떵닢 부터 노라니 어드러케 하면 되갔는지 모르갔서!
너, 앤종일 뭐하고 돌아 다녔냐?
총알은 줘 오지 말라고 얼마나 일렀냐, 일르기를!
이러케 에미 말 안 듣다가 에미 복창 터져 뒤지면 너 아새색기 어드러케 할 판이냐?! 에비가 있냐 한점 피부치가 있냐? 이 세상에 네놈하고 나 말고 누가 있냐? 냄들 처럼 먹을게 만으냐 입을게 만냐?


어쩌자구 쟁신 머리 못 차리고 돌아 다니냐, 다니기를!
쟁신 똑바로 차려도 살까말까 한 판에 쟁신 못 차리면 뒤져야지 살아서 뭐하갔서?
쟁신 차리 갔냐?!! 못 차리 갔냐?!!
내가 저 아새색기 못 되는 꼴 보기 전에 콱 뒤져야지 살아서 뭐 하갔서. 아이고, 이놈에 팔자야. 내 팔자에 무슨 복이 있어서 새끼 복을 타고 났갔서. 지지리도 복도 없는 년이지!”
그는 꿀꿀이죽을 부뚜막에 소리 없이 놓고  방으로 들어가 눈 맞은 군용 방한복을 벗을 생각도 않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조금이라도 체온을 아끼려고 다리를 모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방바닥 냉기와는 달리 두 다리 사이로 체온의 따듯함이 느껴졌다.
이(蝨)도 몸의 온기를 맛보았는지 극성스럽게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이(蝨)의 맹렬함만큼이나 재복에 대한 안악댁의 울분도 컸다. 그는 이의 스멀거림과 가려움증을 잊으려고 그녀의 지난 일들을 주섬주섬 더듬어 봤다.


-재령평야의 곡창인 안악에 부잣집 며느리로 시집 왔다지.
-공산 치하가 되자 지주 반동으로 몰려 하루아침에 콩가루 집안이 되었다지.
-재산 몰수와 강제 이주 때문에 옹진의 검은머리(黑頭里)로 월남을 했다지.
-사변이 나자 남편은 인민군으로 끌려가 생사를 모른다지.
-1·4후퇴 때 빨갱이 세상에서는 살수가 없어서 아구리선(口開船)을 타고 피난을 나왔다지.
 그는 비몽사몽간에 가물가물 이어져 가는 그녀의 지난 일들을 더듬어 가는데 갑자기 안악댁의 악다구리 같은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아니, 이 양반이 뒤질라고 환쟁을 했지! 지금이 오뉴월 삼복인줄 아나, 이 추위에 구둘에 불도 안 지피고 냉방에서 잠을 자니 쟁신이 나가도 한참 나갔구먼요.
몸도 성치 못 하면서 몸 건수를 이러케 해서 어드러케 살갔시요. 날래 이 숭넝 한 사발 드시라요.”
그녀가 내미는 따뜻한 숭늉 한 사발을 받아 마시면서도 아직도 초저녁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문 밖은 환한 아침이었다.


추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한 밤을 보낸 것이다.
부뚜막에 놓아 둔 꿀꿀이죽이 얼어, 깡통 위로 소복이 올라 와 있다.
간밤에 눈이 제법 온 모양이다. 눈 위에 햇살이 부시다. 그는 운신하기 힘든 몸을 일으켜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아저씨, 총알을 한 부대 주워 왔어요. 그것을 까야 할 텐데 아저씨가 까 주실래요.”
재복이가 햇살을 가로막고 서서 총알을 까 달라고 했다.
총알 때문에  어젯밤 내내 치도곤을  쳤는데도 아침이 되자마자 총알을 까 달라고 말하는 재복이의 본 마음이 무엇이며 어찌된 아이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어서 그는 몸을 웅숭그리며 투박하게 말했다.


“너도 총알 깔 줄 알면서 왜 아침부터 총알 타령 이가? 너희 꼬봉들도 총알을 깔 수 있을 텐데, 꼬봉들 시키지 안구 그러냐? 총알은 상하는 물건 아니니 천천히 까도 된다.”
그는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