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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소설]신덕재/땅과 바다의 어름 (5)


왁자지껄한 소리에 재복이는 눈을 떴다.
“요번 서무날부터 동막을 연다지?”
“열면 무슨 소용이 있어, 해래기 하나 없이 죽어 자빠졌는데.”
“참말로 기름이 독하긴 독한 모양이야. 산 것이라고는 모두 죽여 버리니 말이야. 그래도 멀리 있는 삐쭈기는 캘 수 있지 않을까?”


“다 소용없어 갈매기나 새도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판에 이녁네 잡을 조개가 어디 있겠어?”
“괜한 소리 지끄리지 말라우요. 아무리 없다고 해도 갯바당에는 나가 봐야지. 오랜만에 동막을 열겠다는데 나가 보지도 안코 공염불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갔시요?”
안악댁이 한오금을 박듯 말했다.
기름 때문에 온 바다가 죽어 간다 하더라도  다시 조개를 잡는다는 말만으로 별장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활기를 찾았다.


녹슨 갈퀴와 거래를 닦고 망태와 바구니를 씻었다.
서무 날 물때까지는 닷새가 남았다. 닷새가 열흘처럼 지루하게 여겨졌다.
온 동네가 바다에 나갈 일로 법석인데 재복은 전과 달리 시큰둥하다. 재복이에게는 포탄 분해가 더 급하다. 안악댁은 재복이의 행동이 수상했지만 바다에 나갈 일로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이 조개 캘 준비에 바쁜 동안 재복이는 포탄을 분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준비 작업을 착착 진행했다. 망치와 끌이 필요했다.


끌은 날카로우면서도 끌날이 강해야 한다. 망치로 한번 치면 무 잘리 듯 단번에 잘려서 105mm 포탄의 신관(信管)에 충격을 주지 말고 작약(灼藥)에 전해지지 말아야 한다.
“소리개 아자씨는 사도질하려 가깟시까? 조개 캐러 가깟시까? 날래 장만을 하시라요.
온 동네가 야단들인데 아자씨만 빈둥대고 있으면 어드러케 하갔시요.
빵구 난 쟁화도 고무풀로 부쳐 났스니끼 얼렁 채비 하시라요.”
안악댁의 채근이 전보다 심한 것으로 봐서 재복이의 속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분이 소풍갈 아이의 날 밤 샌 뜬 눈 모양이다.


바람도 거세지 않고 햇살이 따사로운 것으로 봐서 여느 때 같으면 조개가 많이 잡힐 날이다.
물 내린 사람 같던 그도 안악댁의 몸 구완으로 마음과 몸이 한결 가볍고 상쾌해졌다.
조개 잡으러 가는 행렬은  파란 하늘에 일렬종대로 날아가는 기러기떼와 같다.
그는 앞서 가는 안악댁의 뒷모습을 보았다. 펑퍼짐한 엉덩이를 씰룩씰룩하며 걷는 모습이 전보다 심한 것으로 보아 한 달여 만에 잡을 조개에 대한 기대가 대단한 모양이다.
그녀의 발걸음이 가벼운 것처럼 그의 발걸음도 가벼웠다.


바다에는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칙게 구멍, 별표 모양의 가막조개 구멍, 물을 보골 보골 내 뿜는 참맛조개 구멍, 보일 듯 말 듯한 갯지렁이 구멍 등 많은 구멍이 있다.
이런 구멍들은 생명체의 상징이며  생존의 표본이다.
각양각색의 구멍 속에서 자연의 균형과 개체의 존속이 이루어진다.
이런 구멍들 때문에 구멍 밖의 소라, 망둥이, 우럭, 전어, 갈매기 등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고 존재할 수 있다.


심지어 사람들조차도 이 구멍의 혜택을 받고 산다.
그런데 이러한 구멍들이 기름띠 때문에 모두 없어지고 사라졌다.
네 시간이 지나야 바다에 나간 사람들이 돌아온다는 것을 아는 재복이는 오늘이 105mm포탄을 분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날이라  생각했다.
동네가 호젓하고 적막한 가운데 여닐 곱살 먹어 보이는 아이들이 무슨 술래잡기를 하려고 하는지 ‘하날때, 두알때, 사마중, 날때, 육낭거지, 팔때, 장군, 고드래뿅’하며 술래를 불러 술래를 정하고 있었다.


재복이는 망치와 끌을 가지고 본부로 향했다.
목수가  망치질을 할 때 망치로  끌을 한번 치면  파고자 하는 깊이만큼 정확하게 파야한다.
이런 목수 질이 곧 목수의 손맛이다.
재복이에게도 지금 이런 손맛이 필요했다.
망치로 끌을 쳐서 정확하게 신주의 두께만큼만 잘라 내고 끌날은 다른 부위에 충격을 주지 말아야 한다.


재복이는 힘을 주어 끌을 내려쳤다.
너무 약한 손맛이었다. 단지 신주에 흠집만 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