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돌담 따라 가는 길
정해놓은 자리에 뿌리를 뻗어
고적하게 자라는 목숨들이 줄서서
고목이 되도록 숲의 꿈을 틔운다
허약한 시대를 맨손으로 받쳐 들고
밤새 별을 찾던 잎사귀들
햇빛 아래 늘어져 그늘로 졸다가
산바람 한 줄금에 갈채를 보낸다
검게 겉껍질 태우는 시간들
어느 제왕을 위한 사열인가
매연에 숨차고 눈길은 흐린데
취기 도는 거리의 방패가 되는지 모른다
잎마다 거느린 사랑의 푸른 뜻도
철이 지나면 삭아서 떨어지고
티끌 나부끼는 길가에 서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