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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소설]땅과 바다의 어름 (6)/신덕재

 

<1593호에 이어 계속>
나오지 않는 가막조개만큼 안악댁의 손놀림이 바쁘다. 너무 급히 캐는 바람에 오른손에 잡은 갈고리와 왼손의 개흙 뒤집기가 엉키어 왼손에 작은 상처가 났다. 그녀는 나오는 피를 갯물에 씻으려고 허리를 폈다.


그 순간 큰 굉음과 함께 청량산 쪽에서 연기와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이를 본 안악댁은 비수의 칼날이 가슴에 꽂혀서 빠지지 않는 아픔과 총알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 구멍이 뻥 뚫린 헛헛함을 느꼈다. 맞다. 재복이의 총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무슨 사고가 일어난 모양이야 하는 단순한 기운만 느낄 뿐이다.
그도 조개 잡던 갈고리와 망태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데 그녀는 벌써 갈고리와 망태를 집어 던지고 청량산으로 향하고 있다.


“잘 뒤졌지, 잘 뒤졌어. 이런 세상에서 살면 뭐 하갔서?
신수가 나아 지갔서, 팔자를 고치 갔서?
지 고생이고 남 고생시키는 일이지.
지겨운 세상 잘 떠났지, 잘 떠났서.”
그가 주재소에서 안악댁을 만났을 때 그녀는 한 손을 머리에 대고 푸념하듯 허공을 바라보며 이렇게 되뇌고 있었다.


“죽일놈, 에미 맴을 이러케 무질러 노코 가면 속이 편하더냐?
약이라도 한 첩 먹고 갈 것이지. 이러케 무단이 가면 에미는 서운해서 어드러케 살란 말이냐?
못 쓸놈의 아새색기 같으니라구!
지지리두 못난 놈이니끼 그러케 갔지, 왜 갔갔서?”
자식을 잃은 슬픔이 복받치는지 한참을 울부짖다가 또 무엇을 잊으려는 듯 머리를 도리도리 졌기도 했다.


그는 그녀에게 위로를 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겉으로는 말 한마디 못하고 순사에게 가서 단지 잘못 했다고 빌고만 있었다.
잘못이 그녀와 재복이에게 없다. 다만 그녀를 빨리 주재소에서 빼 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린애가 돼서 아무것도 모르고 장난을 한 모양이니 한번 너그럽게 생각하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자식을 잃은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한번 풀어 주십시오.”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지 아시오. 미군 M.P들이 야단들이오. 애를 어떻게 돌봤기에 이런 폭발물 사고가 났단 말 입니까? 나 혼자 처리할 문제가 아니니 미군 M.P에게 찾아가 보시요.”
그는 영어 나부랭이를 하는 오 단장을 찾아갔다.


호언장담하는 오 단장의 말과는 달리 그녀는 한 달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막상 돌아온 그녀는 그가 걱정한거와는 달리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성마르고 악착스럽던 모습이 사라지고 무표정하고 말수가 없이 혼자 방에만 있었다.
이런 그녀의 갑작스런 변화는 그에게 또 다른 불안과 초조를 불러 일으켰다.
후드득 후드득 물 내리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봐서 안악댁이 사흘 만에 방에서 나와 목욕을 하는 모양이다.


목욕 소리가 힘 있고 세차다.
그는 그녀가 쏟아 내리는 목욕물로 지난 모든 시름을 씻고 전과 같이 굳건하고 굼튼튼해 지기를 바랐다.
그녀의 목욕 소리는 지금까지 그를 계속 감싸던 불안과 초조를 말끔히 씻어 주고 그녀의 새로운 재기를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이런 안악댁을 보고 그도 이제는 활기차게 바다에도 나가고 돈벌이가 있으면 하리타분하게 굴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가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은 늦은 물때이다.


그래도 동네가 번잡하고 어수선한 것을 보니 모두가 바다에 나갈 모양이다.
그도 안악댁의 변화에 힘입어 바다에 나갈 용기와 여유가 생겼다.
바다는 아직도 황폐하고 고갈되어 있다.
있는 조개를 잡는 일보다 없는 조개를 잡는 것이 더 어렵고 지루하다는 것을 바다가 상하고 병든 후에야 모든 사람들이 비로써 절실히 느꼈다.
아침에 안악댁이 목욕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그녀가 앞으로 새롭게 살아가리라 믿었다. 그러나 바다에 나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갑자기 목욕을 하는 일이라든지, 모두 바다에 나가는데 혼자 집에 있는 일이라든지, 여러 가지 수상스러운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에 대한 불길한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