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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갑 올 겨울 ‘패션 코드’

팔꿈치까지 길게~ 여성미 물씬
7부·5부 소매 외투와 찰떡궁합

 

가끔 지금이 18세기나 19세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럼 나도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처럼 허리는 날씬하게 조여주는 대신 가슴은 풍만하게 살려주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을 텐데. 마차도 탈 수 있겠지. 깃털이 달린 펜에 잉크를 묻혀 연애 편지도 쓰고…. 마음에 드는 남자, 그러나 내게 눈길을 주지 않는 무심한 남자에겐 경박하게 엄지 손가락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그가 내 앞을 스쳐 지날 때 손에 들고 있던 장갑 한 짝을 슬쩍 떨어뜨리는 로맨틱한 구애 행동을 해볼 수도 있을 테고…. 한 달에 한번쯤은 옷장에서 가장 좋은 드레스를 꺼내 입고, 극장에 가겠지. 그때에도 장갑은 필수.

 

한껏 공들여 멋을 낸 18세기식 옷차림에 장갑이 빠질 리는 만무하니까.
그러고 보면 장갑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상징성과 의미를 지닌 액세서리다. 비단 18세기뿐 아니라, 12세기에도, 16세기에도 장갑은 때로 착용자의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로, 때로 더럽고 추악한 것으로 가득한 세계와 착용자를 분리시키는 도구로서 기능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특별한 날이면 꼭 착용해야 하는 필수품으로 여겨지던 장갑이 그 기능을 잃은 것은 격식과 멋보다 기능과 효율성이 중시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실용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보온"의 효과로 어필하던 장갑은 자가용이 보편화 되고 난 뒤로는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잊혀진 소품"이 돼버렸다. 지금에 와서 큰 역할을 하는 장갑이래야 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업용 장갑들뿐.


그러나 이번 시즌, 장갑은 패션계의 트렌드를 좌지우지하는 유명 디자이너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겨울 패션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중세 십자군 전쟁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버버리 컬렉션에서 ‘어두운 분위기의 여전사" 룩을 완성한 것도, 1940년대 할리우드 글래머들이 뿜어내던 매력을 현대에 옮겨 놓고 싶었다는 프리다 지아니니의 구찌 컬렉션에서 1940년대 스타일에 방점을 찍은 것도 장갑이었다. 어디 그 뿐 인가. 베르사체, 샤넬, 마르니, 마크 제이콥스, YSL 등 이번 시즌에는 장갑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브랜드 이름을 꼽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브랜드를 꼽는 게 더 빠를 만큼, 많은 브랜드들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장갑을 내놓았다.


그렇게 다양한 장갑 중에서 디자인 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길이가 팔꿈치 위까지 올라오는 긴 장갑. 오페라 장갑을 변형한 것 같은 이 스타일은 7부 소매나 5부 소매처럼 소매가 짧게 디자인된 외투나 소매를 걷어 입을 수 있는 니트 소재 코트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한다. 스타일링 포인트는 전체적인 차림새의 느낌에 따라 주름의 정도를 조절하는 것. 최대한 길이를 길게 해서 주름이 잡히지 않도록 착용하면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이 들고, 전체적으로 주름이 우글우글하게 잡히도록 끝부분을 약간 아래 쪽으로 내려서 끼면 캐주얼하고 터프한 느낌이 강해진다.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건 팔목 중간 정도까지 올라오는 두툼한 장갑. 이 길이의 장갑들은 대부분 스포티한 디자인을 갖고 있는데 가을에 이어 겨울까지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죽 블루종에 특히 잘 어울린다. 그 밖에 손목 바로 아래까지만 덮이는 디자인의 얇은 가죽 장갑은 정장을 비롯, 정제된 옷차림을 즐기는 사람들이 옷차림을 크게 바꾸지 않고도 색다른 느낌을 연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안전한 스타일링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작년 겨울에 꼈던 평범한 장갑들을 다시 꺼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장갑을 ‘보온의 도구"가 아닌 ‘멋의 도구"로 대하는 자세.


사시사철, 어디서나 장갑을 끼고 다니는 칼 라거펠트는 언젠가 장갑을 왜 착용하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장갑을 왜 끼냐고요? 신발을 왜 신느냐고는 묻지 않으면서 그건 왜 묻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