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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향연-수필-치과의사문인회작]서울치대 기숙사 이야기/이병태 종로구 이병태치과의원원장

서울대 치대 학생 기숙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이희백 주간과 함께 처음 들었다.
2002년 2월 7일 목요일 오전 11시 40분 경 향기 나는 수선화 꽃다발을 들고 은사 김인철 박사님께서 오셨다. 전화도 연락도 없이 느닷없이 들르셨다.
개업 30년 만에 자기 소유 진료실을 가지게 된 제자에게 격려차 들르신 것이다. 제자인 필자는 나이 60이 넘는 해이다. 바로 5분전쯤 해서는 이한수(1948년·서2) 박사께서 나가신 뒤였다. 김인철(1949년·서3) 박사와는 졸업연도가 1년 차이, 계셨더라면 아주 좋았을 것을 아주 아쉬웠다.


“야아, 이 박사 축하해. 이거 수선환데 향기가 좋아.”
“어휴,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아냐. 이사했는데 빨리 오려고 했는데, 한 번 와 봐야지. 닥터 리. 이 박사. 이희백 주간 멀리 있나.”
이 주간에게 전화하자, 곧 달려왔다.
“점심시간이 됐는데, 식사는 어떤 것으로 하실까요.”
“아, 설렁탕도 좋아.”


김인철 박사께서는 서울대치대 동창회장 양원식(서15) 박사에게 치과의원을 양도하시고 자진 은퇴 후, 낚시와 독서로 소일하시며 바쁘게 지내신다. 당신의 지난 날 이야기는 치과에 관한 것이지만 사건들이 많아 아주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 귀한 사실을 들려주셨다.
경성치전의 나기라 다쓰미(有樂達見) 학장이 일본으로 가면서 박명진(朴明鎭·경치전1. 1930) 학장에게 인계해 준 사택이 있었다. 이 사택은 이른바 적산가옥(敵産家屋)이다. 적산가옥은 1945년 8월 15일 이전까지 한국 내에 있던 일제(日帝)나 일본인 소유로 되어 있던 집이다. 박학장은 이북 출신 유학생들에게 기숙사로 개방하였다.


“그 집은 2층 집이었는데 안방이 제일 좋았고 응접실도 괜찮았어. 안방에는 이춘근(경치전12. 1941), 응접실은 김수철(동경치전. 1943) 그리고 1층에 김영해(서2. 1948), 최상열(서1. 1947), 이 모(함경도) 등이 묵었어. 그리고 2층에는 선우양국(서1. 1947), 정낙현(서4. 1950), 김명기(서3. 1949), 김해수(서3. 1949) 등 여러 사람이 지냈어.”
이상은 이날 은사 김인철 박사로부터 들은 내용이다. 박학장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라고 회고하셨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학생 기숙사가 오늘날의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으로 변천하게 되었다. 1961년에 치의예과 입학하였으니 40년이 훨씬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인철 박사께서는 필자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였을 뿐 아니라 치과인생이 시작되는 치의예과 입학시험 때 시험감독도 하셨으니 철두철미한 사제지간이며 그 인연은 공기(空氣)와 같다고나 할지.
하여튼 적산가옥을 서울대 치대 학생기숙사로 활용했었다는 이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지난날 한국 치과계에 존재했던 사실 한 줄을 남긴다.


이한수 박사는 ‘이 집의 위치는 당시의 최고 주택지였다’고 회고했다.
이 집은 남대문에서 남산 순환도로에 진입하면서 힐튼호텔 앞에서 좌로 꺾어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급한 길을 지나 남산식물원(전 남산도서관·신궁) 입구 못미쳐 길가 오른쪽 남향이었다. 나기라 교장 당시 이 집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었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 괄호안은 읽은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찾아 넣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