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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소설]울 아빠 (1)/신덕재

울 아빠는 우리 아빠의 대화체다. 울 아빠는 10대 초등학교 아이들이 또래의 아이들에게 자기아빠를 자랑하거나 흉볼때 쓰는 말이다. 예를 들면 “울 아빠가 어제 MP3 사줬다” “울 아빠랑 대공원에 놀러갔었다” “울 아빠가 어제 술을 많이 드셨다” 등 이다.
네 나이  60이 넘었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울 아빠라는 말을 쓰자니 좀 쑥스러운 감이 든다. 이 나이에 울 아빠라는 말을 쓰고 싶은 이유는 내가 유복자처럼 울 아빠의 얼굴도 모르고 기억도 나지 않지만, 무능하고 허접한 울 아빠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에 알싸하고 알알한 헌데가 있기 때문이다.


울 아빠는 부인이 둘이였다. 그러니까 나의 엄마가 둘인 셈이다. 울 아빠는 첫 번째 부인인 정실부인이 있고 두 번째 부인인 재취 부인이 있다. 정실부인이 아들, 아들, 딸, 아들을 낳고 돌아가셨다. 재취 부인은 딸, 딸, 아들, 딸을 낳았다. 나는 재취 부인의 막내아들이다. 내 동생인 재취 부인의 막내딸이 태어나 1년도 안 돼 죽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로 울 아빠의 막내둥이이다. 재취 부인이 나의 생모이고 정실부인은 나의 큰 어머니이다.
그러니까 나는 서자인지도 모르겠다. 엄밀히 따지면 난 서자는 아니다. 서자는 본 부인이 살아 있는데 첩을 두어서 낳은 아이이나 나는 본 부인이 죽은 후 부인을 다시 얻은 재취 부인의 자식이니 서자는 아니다.


그래도 울 아빠는 나를 서자 취급했다. 내가 4살 때인 것 같다. 울 아빠는 학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학식이라고 해 봐야 한문 사서나 삼경 정도 읽을 줄 아는 정도라 생각된다. 정실부인의 맏아들이고 나의 최고 큰 형은 그 때 결혼을 해서 나보다 한살 많은 아들을 두고 있었다. 울 아빠의 장손이고 나의 장조카이다. 난 장조카에게 불만이 많았다. 왜냐하면 울 아빠는 나보다 장조카를 더 위해 주었기 때문이다. 장조카가 나보다 한 살  더 많기는 해도 울 아빠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아들이고 장조카는 손자인데 왜 울 아빠는 항상 나보다 장조카를 예뻐하고 챙겨주고 신경을 써 주는지 모르겠다.


초여름이였던 것 같다. 울 아빠가 나와 장조카를 불러 천자문을 가르쳐 주셨다. 그 때에도 울 아빠는 장조카에게는 크고 잘 인쇄된 천자문 책을 주었고 나에게는 작고 다 해진 필사본 천자문 책을 주었다. 나는 그 때 장조카의 천자문 책을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울 아빠는 내 맘은 거덜 떠 보지도 않고 천자문만 가르치니라고 글자를 막대기로 짚어가며 그냥 설명만 하였다. 은근히 화가 났지만 울 아빠가 나에게 공부를 잘 한다고 칭찬을 해주어서 맘이 풀렸다.
그 이후 난 울 아빠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울 아빠는 나의 맘을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가끔 칭찬이나 받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분명히 울 아빠 앞에서 장조카와 천자문을 배운 것이 기억나는데 울 아빠의 얼굴 모습이 어떠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울 아빠에 대한 기대를 잃었기 때문일까? 기억은 잘 안 나도 울 아빠는 분명히 힘이 세고 체구가 컷을 것이다. 부인을 둘씩 두고 자식을 8명이나 났으니 말이다.


또 울 아빠는 할아버지로부터 전답을 좀 받은 모양이다. 울 아빠가 벌어서 전답을 장만할 분은 못됐다. 하지만 부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여러 말을 두고 농사를 지었으니 말이다. 500석이라든가 1000석 이라든가 알 수는 없지만 공산주의 국가가 된 다음에 지주반동으로 몰려 평안북도 강계로 강제이주를 당했을 정도니 말이다. 그 때 울 아빠는 매우 힘들어했다. 난 울 아빠가 왜 힘들어하는지 몰랐다. 다만 돈 많고 힘 센 울 아빠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괜스레 시기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울 아빠가 불쌍해 보였다.


어느 추운 저녁녘에 울 아빠가 흑색이 돼서 뛰어들어 왔다.
“큰 아이 어디 있니? 언넝 피하라고 해라!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인민군에 들어가야 한다고 난리다. 작은 애도 같이 숨어라!”


큰 형과 작은 형은 뒷뜰 김치광으로 만든 작은 굴에 숨었다. 왜 형들이 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