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7 (금)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문인의 향연/소설]울 아빠 (4)/신덕재


<1622호에 이어>


큰 누나가 시집을 간 후 우리 식구는 인천 송도에서 서울 삼양동 난민촌으로 왔다. 난민들에게 무상으로 집을 준다는 말에 인천 송도의 조개 잡이 생활을 그만두고 대처인 서울로 왔다. 대처라고 서울에 오니 돈을 벌수가 없다. 송도에서는 바다에 나가 밑천 없이 돈을 벌수 있었는데 서울에 오니 내 집 한 칸은 생겼지만 장사를 하자면 장사 밑천이 필요했다. 또 장사 수완도 있어야 했다.
울 생모는 새우젓, 엿, 생선 등을 다라이에 이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소리를 질러대며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행상을 했다. 울 생모 덕분에 난 중학교를 갔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는 해에 낭뿌리에서 생이별한 울 아빠의 소식을 듣게 됐다. 울 아빠가 살아 계신단다. 어떻게 공산치하에서 울 아빠가 살아 계실 수 있을까? 이것은 기적이다. 반동지주에, 월남가족에, 기피자에, 홀몸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여간에 살아 계시다니 기쁘고 반갑다. 우리 식구는 모두 울 아빠가 죽었을 거라고 믿었다. 특히 울 아빠는 사상적으로 공산주의가 맞지 않고, 혼자 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혈혈단신 살아갈 수 있었겠는가?


울 아빠의 소식은 이러했다. 피난 나오던 낭뿌리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고향사람이 이곳 군인에 의해 잡혀오는 바람에 알게 됐다. 잡혀 온 배에는 우리 먼 친척 되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북한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 남기로 했단다. 그러니까 6년 만에 고향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피난 온 모든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하루살이에 여념이 없던 때에 어느 날 갑자기 고향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거기다 새로운 고향 소식까지 가지고 와 얘기까지 들려주니 피난 온 모든 사람들이 흥분하고 기대에 차 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서로 북한에 남은 제 식구들 안부를 물었다.


잡혀 온 먼 친척에 의하면 울 아빠는 새 부인을 또 얻었단다. 맞아! 울 아빠는 여자 없이는 못 살아. 새 부인을 얻었다는 말에 울 생모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난 울화통이 터졌다.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느냐 말이다. 울 아빠야 붉은 세상에서 반동으로 천대는 받았을망정 새 부인 얻어 배급받아 먹으며 편하게 살았을 것 아닌가? “에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이제는 울 아빠를 잊기로 했다. 만날 수도 없고 만나도 새 부인과 사는데 우리가 낄 처지도 못되니, 구차하게 끼워 달라고 애걸할 필요도 없다.


둘째 누나, 그러니까 울 생모의 큰 딸이 시집을 갔다. 없고 배우지 못한 둘째 누나는 평범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둘째 매부도 중학교만 겨우 나왔다. 둘째 매부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물건을 운반하는 일을 했다. 나중에  대장간을 차렸다. 힘은 들었지만 제법 돈을 벌었다. 둘째 누나는 아들, 아들과 아들 딸 쌍둥이를 낳았다.
어느 더운 여름 대장간 화덕 옆에서 일하던 매부가 간질로 넘어졌다. 눈을 뒤집어 까고 손과 발을 버덜버덜 떨면서 개 거품을 물고 나가 자빠져 버렸다. 심한 과로 때문이란다. 피난살이로 고생만한 둘째 누나의 결혼생활이 처음에는 순탄한 듯 했으나 둘째 매부의 간질로 둘째 누나 역시 맘고생을 하게 됐다.


울 생모와 두 누나들의 덕으로 난 착실히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사실인지는 모르나 천자문을 배울 때부터 난 울 아빠를 닮아 공부를 잘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나 국민학교와 중학교 때는 반에서 3등 안에 들었다. 나는 내 스스로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류고등학교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진 것도 울 아빠 때문일까?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지고 나니 난감하고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누구하나 나의 진로에 대해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울 아빠가 그리웠다. 학교를 포기 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나가 장사 일을 하면 우리 집안 형편이 좋아질 것 아닌가? 울 생모에게 학교를 포기 하겠다고 했다가 뒤지게 맞았다. 사는 데는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