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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시]기탄잘리(2)/이재윤

 

학교에서 나는 참으로 짓궂었습니다
짝지의 필통에 지렁이 한 마리 넣어두기도 하고
장난 삼아 연필 한 자루 훔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짝지의 연필을 훔쳐서 내 필통에 넣고
가방을 닫고 있었을 때
나의 임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나는 무심결에 내 가방을 감추며 임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장난 삼아 했던 나의 일이 임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이 왜 그리도 뛰었을까요?
나는 임이 묻는다면 훔쳤다고 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임은 나의 머리만 쓰다듬고
단지 미소지으며 묻지 않았습니다
그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묻지 않았습니다
나흘째 되는 날 나는 내 짝지가 없는 틈을 타
몰래 짝지의 필통을 열었습니다
나흘 전 짝지의 연필을 훔칠 때보다
더 떨리는 손으로 짝지의 연필과 내 연필
한 자루를 몰래 넣어 주었습니다
그날 따라 임은 또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참으로 시원했습니다
원두막에서 낮잠을 자도
이보다 더 시원할 수야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