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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소설]울 아빠 (6)/신덕재

<1626호에 이어>


햇빛정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오고갔다. 나도 피난 나온 지 꼭 50년만인 2002년 5월 15일에 평양에 갔다. 북한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초청장을 받았다.
“한민족복지재단 앞.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경제협력련합회는 경제협력사업을 협의하기 위하여 귀 대표단이 편리한 시기에 공화국을 방문하도록 초청합니다. 련합회는 해당 기관이 공화국 체류기간 모든 편의를 제공하며 신변 안전과 무사귀환을 보장한다는 것을 알리는 바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경제협력련합회. 주체91(2002)년 5월 11일"
북경을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 평양! 평양! 평양! 울 아빠가 있는 곳! 꿈에서도 가보고 싶은 곳! 울 생모를 울면서 돌아가게 한 곳! 1시간이면 가는 것을 50년이나 기다리게 한 곳! 살아서는 못 가볼 것만 같았던 곳!


마음의 응어리가 가슴에 뭉쳐 꽉 메인 듯하다. 평양에 도착하고 보니 울 아빠, 울 생모, 큰 형님, 큰 누나, 작은 누나, 형수 등 집안 식구 모두가 “에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하고 울부짖는 듯하다.
평양 순안공항에 내려 땅을 치며 울고 싶다.  울 아빠가 미워서. 울 아빠의 어리석음이 미워서. 아니 울 아빠가 그리워서. 울 아빠가 보고 싶어서. 아니 울 아빠의 품에 안기고 싶어서.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는 말이 있지만 평양의 모습은 산천도 간 곳 없고 인걸도 간 곳이 없는 듯하다. 거리마다 건물마다에는 생소한 표어들이 붉게 걸려 있고 사람들은 우중충하고 시내는 을씨년스럽다.


난 슬펐다. 울 아빠가 있는 곳이 화려하고 풍요로우며 향기와 기름이 넘치는 곳이기를 바랬다. 기대에는 못미처도 언저리는 갔어야 했다. 벅찬 가슴과 기대에 찬 꿈과 바람이 사라지는 순간 울 아빠가 불쌍하고 울 아빠의 지난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됐다.


내 동생이라는 사람이 고려호텔로 찾아 왔다. 울 아빠의 셋째 부인으로부터 난 아들이다. 난 무의식중에 동생의 얼굴에서 울 아빠의 모습을 찾으려고 애를 섰다. 울 아빠와는 달리 키는 작고, 얼굴은 새까맣게 탔고 체구는 말라 있었다. 군인 냄새가 났다. 어느 구석에서도 울 아빠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으나, “형님"하고 달려드는 모습에서 이게 혈육의 정이란 말인가?


“에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동생을 만났어도 동생인지 아닌지를 챙겨야 하는 세상이 싫다. 동생이 나를 보고 “형님" 하는데도 나는 “야 이놈아"하고 덥석 잡아 주지 못하는 세상이 싫다. 이런 세상에 왜 울 아빠가 살아, 나에게 배다른 동생을 만나게 하는지 모르겠다. 좋은 환상과 즐거운 기억만 갔고 싶었는데 낙원의 꽃동네는 어디로 가고 배고픈 민중과 헐벗은 인민만이 있단 말인가.
동생 말에 의하면 울 아빠는 내가 꿈꾸던 때에 돌아가신 것 같다. 울 아빠도 돌아가시면서 나를 잊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울 아빠의 삶은 힘든 삶이었단다. 그래도 울 아빠는 동생에게 곧고 바르게 살라고 했단다.


동생은 해주 1중학교를 나와 해주 정치대학을 졸업하고 군관으로 군에 들어가 지금은 좌급 군관인 상좌로 남한의 대령과 같은 계급이란다. 울 아빠의 외골수와는 달리 동생은 시류에 잘 적응해 북한 사회에서는 모두 부러워하는 상좌 군관으로 성공한 모양이다. 울 아빠와 동생을 놓고 보았을 때 누가 잘한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이 두 사람을 달리 만든 것 아닌가? “에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울 아빠가 울 생모와 헤어지듯 동생과 나도 헤어졌다. 나는 동생과 헤지면서 울지 않았다. 동생도 울지 않았다. 언제 만나자는 약속도 없었다. 참 못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나와 동생이 생겨나, 울 아빠를 똑같이 아빠라고 부르면서,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고 헤어지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세상이 정말 싫다. 


평양을 갔다 온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요사이 난 금강산 온정리 제1인민병원에 1주일에 한번씩 진료를 간다. 북한을 돕고 싶다. 북한이 어렵게 살아서가 아니라, 동생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