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7 (금)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문인의향연-수필-(제1632호에 이어)]미륵산 챙바위(하)/김영진 프레야 영진치과의원 원장

<1632호에 이어>
그토록 혹한과 감기에 시달리다가도 봄만 되면 온 산하가 연초록 옷으로 갈아입고 나를 반긴다. 비단결 같은 훈풍이 겨우내 얼어터진 피부를 살갑게 어루만져 주었다.


사월이 되면 언덕길엔 아지랑이가 깔리고 높은 하늘에서는 종달새가 쉬지 않고 노래 불렀다. 멀고 먼 오솔길 지평선 위에 장엄하게 누워있는 미륵산 정상으로 옅은 구름들이 흘러가고 길가에 펼쳐진 시리도록 푸르렀던 보리밭은 마음속에 새 생명과 희망을 채워주었다.
시냇가를 걸으면서 물소리와 얘기했고 산길을 걸으면서 새들과 노래했다. 길가의 할미꽃이나 민들레, 질경이 한 송이도 모두가 새록새록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보기에도 아까운 이런 봄 친구들과 함께하면 멀고 먼 등하교 길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어제는 다소곳했던 할미꽃 꽃망울이 오늘엔 함초롱한 꽃송이가 되어 인사를 건넨다. 발걸음마다 기뻤고 매일 매일이 새로웠다. 논둑길에서는 쑥을 캐고 언덕길에서는 달콤한 삘기를 뽑았다. 말라붙은 쇠똥에 불을 붙여 여기저기 들불을 놓았다.


집보다 숲이 좋았고 개울이 좋았으며 물고기와 개구리와 돌멩이와 곤충과 산과 들이 그대로 모두 친구가 되어주었다. 어찌어찌 국민학교 6년을 보내고 열네 살에 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는 더욱 멀어서 편도 6km가 넘었다. 길이 좀 넓어져서 가끔 군용차가 흙먼지를 날리며 지나다니는 것 말고는 국민학교 시절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서면 9시가 다 되어서야 학교에 도착했다. 무거운 책가방에 점심과 저녁 도시락을 두 개씩이나 넣고 들고 다녀야 했다. 어째서 그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침에 집을 나선 후 학교에 도착하면 배가 너무 고파서 첫 시간을 마치자마자 점심용 도시락을 먹는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저녁용 도시락을 먹으면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도착할 무렵인 오후 8시쯤엔 거의 탈진상태가 되었다.


머나먼 하교 길에 친구들과 함께 남의 고구마 밭에 들어가 고구마를 캐 먹거나 보리이삭을 따서 모닥불을 피운 후 보리민둥이를 만들어 먹는 것쯤은 예삿일이었다. 무를 뽑아 먹거나 배추뿌리를 캐 먹는 것은 그랬다 쳐도 딸기서리나 참외서리는 몰매를 각오하고 감행해야 하는 모험이었다. 한번은 옹에 밭에 들어갔다가 미쳐 따 먹어 보지도 못하고 개에 물려 일주일이나 피를 흘리며 발을 절뚝거리고 다녀야만 했다.
일요일이 되면 논이나 밭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고단해 잠자기에만 바빴으니 돌이켜보면 집이라고는 숙소의 가치밖에 없었던 듯싶다.


그토록 어려웠던 시절 나의 마음을 보드랍게 감싸주고 고달픈 삼십 리 등하교 길을 위로해준 것은 언제나 변함없는 미륵산 맨 오른쪽 등성이의 챙바위였다. 군인모자처럼 생긴 챙바위는 그윽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아침이나 저녁이나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당시 미륵산 중턱에는 무반동포 사격장이 있어서 사격훈련을 하는 날이면 포탄이 터지는 폭음에 장짓문이 덜커덩하고 저절로 열릴 지경이었다. 허옇게 피부가 벗겨진 산자락에서 포탄이 작렬할 때마다 번쩍이는 섬광이 눈을 찔렀다.
그러나 인자한 챙바위는 지축을 울리는 포성에도, 허리에서 터지는 포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늘 그윽한 미소를 머금은 채 끝없는 황톳길을 걸어 다니는 나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미륵산 챙바위와 남몰래 약속하고 또 약속했다. 자라면 대학교수가 되어 멋진 카이젤 수염을 기르고 중절모를 쓴 채 말을 타고 이 길을 지나며 정중히 인사드리겠노라고….
그리고 사십 년의 세월이 거짓말처럼 흘러갔다. 사격장의 포성이 멎은 지도 어언 삼십년이 지났다. 오늘의 미륵산 챙바위는 사격장이 폐쇄된 후 아무 탈 없이 자라난 소나무들 사이로 그 끝 부분만이 간신히 보인다.


아마도 나만이 챙바위 끄트머리를 나뭇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