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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녘(5) / 1. 길 / 신덕재(1643호에 이어)



어버이 수령님의 은혜로 아스팔트길이 생긴 이후, 분이와 옥경이는 매바위봉이나 수정봉에 가서 푸성귀를 따거나 고성항 앞 바다에서 사돌질이나, 옹대이질이나, 쓰레질이나, 낚시질이나 고깨로 바지락조개를 까는 일이 없어졌다. 또 텃밭이 생겨 남새를 심을 수 있어 아침에 부루 쌈을 먹을망정 궁한 기색이 꽉 찬 가년스럽지는 않게 됐다. 풍문처럼 나무껍질을 먹거나 인육을 먹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어버이 수령님과 경외하는 장군님 덕분이기도 하고 부르죠아 현대아산의 아스팔트 길 덕이기도 했다.


그래도 투철한 혁명사상으로 무장한 옥경이는 부르죠아 현대아산이 아스팔트길을 깔았을 때, 헌머리에 이 꼬이고, 개털에 벼룩 끼듯이 의심 많은 여우마냥 옥경이는 속을 끓이며 투덜거렸다.
“남조선의 현대아산 말이야. 강한 게 약한 거 잡아먹는 승냥이 법칙 같은 거 아냐?”
“어버이 수령님께서 하신 일인데 무슨 승냥이 법칙이야! 승냥이 법칙이라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앉아 있갔어? 수정봉이다 고성 앞 바다나 톺아 다녀야 할 판인데.”
분이는 옥경이의 옹골찬 혁명사상을 제끼고 싶어서 억 벌로 어깃장을 놓았다.


매바위 고개에는 두개의 길이 있다. 즉 우리 공화국 인민이 만든 한길과 남조선 부르죠아가 만든 아스팔트길이 나란히 있다. 길은 길이나 우리 인민들이 아스팔트길로 다닐 수 없고, 남조선 관광 인민들이 우리 한길을 다닐 수 없다. 그러나 매바위 고개에서 만큼은 남조선 관광 인민들과 우리 조선 인민들이 각자의 모상을 볼 수 있다.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우리 인민의 모상을 남조선 관광 인민들이 차를 타고 가면서 언듯언듯 볼 수 있고, 우리 인민들은 차를 타고 휘딱 지나가는 남조선 관광 인민들을 차창으로 울긋불긋 입은 입상을 히득히득 볼 수가 있다.
물론 옥경이와 분이는 관광특구 내에서 남조선 인민들을 볼 수 있다. 금강산 관광특구 내에 있는 옥경이는 남조선 사람들의 입상이나 모상을 자세히 볼 수 있으나, 분이는 온정리 인민병원이 관광특구와 지척이지만 옥경이처럼 면바로에 있지 못해 남조선 관광 인민을 먼발치로만 본다.
매바위 고개의 한길 보수 혁명사업은 뭇 인민이 모여 하는 의무사업이라 모든 인민들이 고개에 나와 잡소리 주고받기가 첫 새벽에 양기 벗치 듯 하고, 이리저리 바제이다 부나비 불빛에 꼬이듯 몽켜 앉아 흰소리 헛소리 괜소리 올소리를 지껄이는 곳이기도 하다.


분이는 지난번 총화에서 옥경이에게 당한 수모를 이길 양으로 가능한 일찍 매바위 고개로 갔으나 오늘도 개탕이고 헛방이다. 그런데 옥경이가 전과 달리 오늘은 살망살망 하게 굴면서 반가운 듯 손짓을 하며 장맞이 하듯 분이를 맞이한다.
“분이야! 일찍 오는구나야, 잔뜩 기다리고 있었다야.”
20년 넘게 한 마을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며 살았으니 맴 속으로 서로 울골질을 할망정 겉으로는 서로 친구로 동무로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분이도 시까스릴 필요 없이 시쁜 기색을 나타내지 않고 해물해물 웃음 끼를 띠우며 “옥경이도 일찍 왔네. 무슨 좋은 일이 있니?”
“아니, 나도 인차 왔어. 좋은 일은 무슨 좋은 일? 매냥 그 일이 그 일이지.”


옥경이는 아무 일 없는 듯이 말은 했지만 숭칙스럽게 바짝 다가 와, 슬쩍 손을 잡더니 실눈으로 곁 눈짓을 하면서 은근히 엄밀한 얘기를 할 양으로 길섶으로 분이를 끌어 당겼다. 분이는 은근히 걱정이 됐고, 타고난 귀신같은 년이 또 무슨 얼토당토 않은 일을 꾸밀까 믿기지 않아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슬며시 옥경이를 따라갔다.
“분이야, 이번에 평양에서 금강산 관광총국에 새로 온 김철수 동무를 아니?”
옥경이는 무슨 중대하고 씻은 팥알처럼 또글또글한 일이 있는 듯이 김철수라는 이름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아니,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그 동무가 어째서?”


분이는 생뚱맞은 옥경이의 말에 흥미도 없고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아 보여서 시군둥하게 대답을 했다. 옥경이는 혹시 옆 솔가지 위 새가 듣기라도 하면 큰일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