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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김영훈 / 무등수박

 


구름이 가린
무등산의 얼굴을 보아라
산정에서 잇닿은 산정의 그 결속
굳게 다문 능선과 능선을 마주하고
황토벌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던가

굽이굽이 젖어드는 햇살을 향해
돋아나는 잡초들 헤집고
밑바닥으로 기며 뻗어나는 덩굴
얼룩진 무늬 새기며 커가는 것을

무게로 보나
크기로 보나
어떤 알맹이가 따를 수 있겠는가
굶주린 짐승이라도
물고 달아날 수 없는 별빛인 것을

여름밤을 깔고 앉아
갈증 재우는 이 목축임이
조각난 얼굴이 되어
비로소 선명한 빛깔 되는
體液으로 바치는 無等山 수박


왜정치하에 있을 때는 냉장고가 없었다. 청량음료수도 귀했다. 그래서 삼복더위가 되면 샘물에 수박을 담가두었다가 잘라먹는 것이 갈증을 푸는 데는 으뜸이었다.
표현의 자유가 없었던 군사독재 시절, 소신껏 글을 쓰다가 자칫하면 끌려가 뭇매를 맞거나 억압을 받던 뼈아픈 표현의 암흑기였다. 민주화 투쟁인사나 데모하던 학생들은 형무소를 큰집 드나들 듯했다.


당시 마침 ‘현대시학’을 주간하시던 고인 전봉건 시인님이 원고를 청탁하기에 몇 편 보내드렸다.  편집 중 전화로 이 시가 출판되면 문제가 생기니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개작 발표한 적이 있다.


파란 하늘/ 양지바른 울타리/ 둥지 틀고 앉아/ 울음 짓던 새여// 젖은 창살/ 웅크려 엎딘/ 너의 죄명은 무엇이뇨// 비탈과 벼랑/ 풀과 나무/ 長天을 나래로 치며 치솟던/ 너의 뜻은 또 어디뇨// 움속같은 새장에서/ 사슬로 엮은 햇빛/ 먼 꿈으로 가누는/ 내 작은 가슴이여
‘새장 앞에서’ 전문이었다.


5.18 광주항쟁이 일어났을 때는 ‘무등 수박’이라는 시를 썼다. 내 첫 시집 ‘꿈으로 날으는 새’에 수록되어 출판되니 고교동창인 박범수 철학교수가 내게 안부 전화를 했다. “너 괜찮냐?”는 것이었다. 살벌했던 당시에 이 시를 읽은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간덩이가 크다.” 거나 “간덩이가 부었다”고 했다. 지금은 내 젊은 시절의 추억이 되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