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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수필-임신부 환자와의 대화/박용호

얼굴은 앳되어 보이지만 한눈에 만삭인 여성이 내원했다.
8개월째이고 첫 임신이라고 했다. 어금니 충치로 인한 통증으로 왔는데, 직장 근처 두 치과에 갔더니 한 의사는 신경치료를 출산 후에 하기를 권유했고, 다른 의사는 산부인과의 의뢰서를 가져오라고 했단다.


그러면서, 자기 어머니가 예전에 여기서 임신 때 사랑니 수술을 받았다고, 어머니가 여길 가보란다고 묻고 물어 왔단다. 아… 나는 잠시 감격하여 순간, 20여 년 전 개업 첫해에 퉁퉁 볼이 부어 내원했던 그녀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수술 후에 밝아진 안색만큼이나 하얀 안개꽃을 한 아름 안고 왔었는데, 그때는 참 겁도 없었지. 지금 같으면 절개 배농도 사람 보아가며 했을 터인데.’
고맙기도 하고 대견스러운 생각이 들어 아무래도 마음이 더 간다. 얼핏 supine position은 말기 임부에 좋지 않다고 배운 것이 생각나 -아마 뇌혈류가 감소해서 졸도하기 쉽다고 했지.- 위치를 ‘업’ 시키었다.
요즘은 임신이 벼슬이다.


아무래도 저출산 탓이고 여성 상위시대이며, 지식과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출산을 과잉염려하는 세태 일 것이다. 더구나 점점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가임여성이 노력해도 임신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아서, 일단 원하는 임신이 되면 그 신경 쓰는 것은 말도 못할 것이다.
그러니 치과치료 받는 임신부도 두렵지만 치과의사도 두렵다. 개원가에선 산부인과 의사들조차 치과치료가 안전하다는 자필서신을 보내주기를 꺼린다. 의료사고가 무서워 필자도 한동안은 아주 긴급한 경우에만 해주다가, 요즘에는 시집간 딸 생각에 측은한 생각이 들어 웬만하면 진료를 해준다.
말은 없어도 임신부들은 본능적으로 ‘이 진료를 받아서, 이 약을 먹어서 아기에 무슨 해가 않될까?’ 걱정한다. 매스컴에 자주 보이는 의료사고 소식도 부채질해서 유산, 조산, 기형아 출산에 대한 염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사실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그 방대한 요인들을 조물주 말고 누가 알랴.


구강외과의 바이블인 Archer 교과서에, 임신 중에 구강외과 수술을 받은 1000명의 임신부를 추적 조사했더니 아무런 합병증이나 악화된 케이스가 단 한건도 없었다는 말이 나와 있다. 그런데 치과의사마저 불안하면 진료를 할 수가 없다.
임신부가 치료는 꼭 필요한데, 진료 자체를 꺼리면 우선 선의의 감정으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염증이 확산되는 등의 후유증으로 오히려 더 태아에 좋지 않을 것” 이라고 완곡히 권유한다. 방사선 촬영 때 방호복을 입히고, 햇볕에도 정상적인 방사능이 있어서 괜찮다고 해도 선뜻 동의를 안하는 경우는 아예 생략해서 나중에 나쁜 ‘빌미’가 되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어느 선배가 임신부를 촬영 후 신경치료를 했는데, 유산했다고 거세게 항의 받았다는 경험담을 들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부분마취 시에도 부담이 되는데 “이것은 전신마취와 달라서 부분적으로만 작용하다가 곧 풀리므로 태아에 아무 지장이 없다”라고 하면 대부분 수긍을 하는데, 좀 까다로운 임부에게는 미진한듯하면 “임신 중에는 혈류와 자궁이 약의 악영향으로부터 차단되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학생 때 배운 drug-blood placenta barrier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사실 본인도 자세한 메카니즘은 다 잊어버렸고, 또 이 사실이 정확히 맞는지도 확신이 안서지만 환자로 하여금 안심하고 진료 받는 것에는 일조하지 않는가.


언제인가 리도카인의 제품 설명서를 자세히 보니 임신한 동물 실험에서 과량 사용시의 안정성은 확실하지 않다고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로또 당첨만큼이나 어려운 부작용의 부정적 가능성에만 얽매인다면, 치료를 함으로써 얻는 많은 긍정적인 장점들을 잃을 것이다.
의료사고가 항상 염려는 되지만, 임신부에 대한 진료는 결국 치과의사의 기본적 도리이자 책무이고, 사랑의 정신만 조금 있다면 무조건 피할 진료는 아니라고 본다.
대를 이어 내원했던 그 임신 여성은 몇 번의 신경치료를 마무리하고 상당히 감사해 한다. “출산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