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 현역 단독 개원
“아직도 나를 찾는 환자들 있어 행복”
유시복
일산 유시복치과의원 원장
“정년은 없다” 55년 넘게 환자 돌봐
일제강점기 등 치과계 역사 산증인
“부침 심한 개원환경 너무 안타까워”
끊임없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면서 치열한 경쟁까지 해야 하는 치과의사들의 정년은 몇 세일까. 여기 그 ‘우문’에 ‘현답’을 내놓은 한 원로 치과의사가 있다.
경기 일산 주엽역 인근에서 개원 중인 유시복 원장은 1927년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로 치면 85세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현역 치과의사로 활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단독 개원의라는 사실이다.
‘100세 한의사는 있고, 80세 치과의사는 없다’는 말도 있지만 무려 55년을 치과의사로 살아온 유 원장의 세월은 이 같은 푸념마저 무색하게 한다.
“치과의사로 살아온 그 세월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적 없다”는 유 원장은 “서울 마포에서 오랜 기간 개원을 한 후 일산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아직도 그 먼 곳에서 찾아오는 환자가 있어 진료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하철 역 바로 인근에 지금의 치과를 개원한 것도 먼 곳에서 오는 예전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서다.
유 원장은 “비슷한 연배의 동료나 선배 중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지금은 몇 분 안 계신다”며 “그 중에서도 현재까지 일선에서 진료하는 분은 전국적으로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정 치과의사 출신인 그는 일제 강점기와 6·25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굴곡을 온 몸으로 겪으며 초창기 우리 치과계가 연착륙하는데 디딤돌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 치과계 역사의 산증인이다.
“일본에서 치과기공 일을 배운 후 귀국했습니다. 해방 후 당시 치대 교수로부터 검정 치과의사가 될 것을 권유받고 이를 준비하던 중 6·25가 발발, 민간인 신분으로 납북됐죠. 당시 이범석 장군의 조선민족청년단에 가입한 전력이 있었던 만큼 벌목 작업소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한 동안 고초를 겪던 그는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직후 도망쳐 남쪽으로 내려왔다. 비록 민간인으로 납북됐지만 미군 포로수용소에 머무르던 그가 정식 치과의사가 된 것은 1956년의 일이었다. 이후 대구, 경북 문경, 서울 마포를 거쳐 현재 일산에서 개원하기 까지 55년 동안 그는 수많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진료에 열중해 왔다.
유 원장의 장남도 현재 서울 강서구에서 개원 중인 치과의사 가족이다. 아들 유주하 원장(로고스치과의원)은 서울치대를 85년 졸업, 25년의 개원 경력을 가진 중견 치과의사로 활약하고 있다.
유 원장은 “특별히 치과의사가 되라고 (아들에게) 권하지는 않았으며, 졸업 후 바로 개원하는 바람에 함께 근무한 적은 없었다”면서도 “치과의사인 아들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85세 현역 개원의인 유 원장이 처한 작금의 현실은 55년 ‘치과의사 외길’에 대한 명백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는 불과 몇 년 사이 주변 지역 치과계의 불황이 급속하게 진행됐다고 한탄했다. 개원하는 치과의사들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격화된 것이다.
유 원장은 “지난해부터는 환자가 눈에 띌 정도로 줄고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 근처에 있는 다른 치과들 역시 경영이 어려워 폐원과 개원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 현재 배출되는 치과의사의 수가 너무 많다”며 “치협 등에서 노력해 치과의사들의 과잉배출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치과의사가 말단 구멍가게보다 못한 상황이 가까운 장래에 올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선영 기자 young@k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