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 2025년 치매 예상인구는 100만 명에 이르고, 이 추세대로면 2040년께에는 200만 명을 넘어설 거라는 게 정부의 통계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2050년 43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말 그대로 ‘치매의 저주’다. 하지만 그동안 치매와 관련한 담론에 치의학이 개입한 적은 없었다. 무수한 논문과 연구가 ‘구강건강→치매’의 경로를 증거하고 있지만, 치매와 관련한 전신치의학 담론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이와 관련 치협은 치매관리와 예방에 치과계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한 단초를 마련하고 ‘치매 예방 및 관리를 위한 구강건강정책TF’를 발족했다. 본지는 전신치의학의 관점에서 치매와 치의학의 상관관계를 밝히고, 치과의 역할을 조명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이제 치매는 더 이상 개인이나 한 가족이 감당해야 할 ‘국지전’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보건복지공약의 첫머리에 ‘치매국가책임제’를 올려 국가 단위에서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7월 4일 임명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를 강화하고, 지금껏 가족의 헌신이 요구되던 치매를 국가에서 책임지는 국가책임제로 전환해 예방, 조기발견을 위한 투자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정책의 방향을 구체화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집을 살펴보면, 치매 관련 예산 2000억 원을 편성해 ▲치매지원센터 확대 ▲치매안심병원 설립 ▲노인장기요양보험 본인부담 상한제 도입 ▲치매 의료비 90% 건강보험 적용 ▲전문 요양사 파견 등의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디에도 치과와 관련된 문항을 찾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동안 치매는 사실상 병을 유발하는 병소(focus)의 측면에서 논의돼 온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전신의학의 관점에서 치매가 유발되는 원인과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의학적 견해가 활발하게 개진되고 있다.
치의학계 역시 이런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치의학계는 최근 ‘전신치의학’의 관점에서 치매 등 전신질환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하면서 구강악안면 부위를 ‘전신건강의 관문’으로 인식시키고, 구강건강이 전신건강과 긴밀하게 연동돼 있다는 다양한 에비던스를 축적하고 있다.
치협은 최근 이와 관련, ‘치매와 구강건강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고, 치매와 구강건강과의 연관성, 치매 관리에서 치과의 역할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 치매-구강 에비던스 ‘차고도 넘친다’
실제로 치매와 구강건강의 연관성을 다룬 에비던스는 차고도 넘친다. 일단 잔존치아 개수와 치매와의 상관관계.
치의학 관점에서 치매관리가 가장 잘 이뤄지는 일본은 이에 대한 에비던스가 풍부한 국가 중 하나다. 일본 큐슈대학 연구팀이 치아상실개수와 혈관성 치매와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치아가 1~9개 있는 노인은 20개 있는 노인보다 혈관성 치매가 발병할 확률이 81%나 높다. 또, 치아가 10~19개 있는 노인은 20개 이상 노인보다 치매 위험이 62% 높았다.
보통 정상적인 저작이 가능한 치아의 개수를 20개로 평가하는데, 저작의 기능이 떨어지면 치매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영국 킹스칼리지 연구팀이 노인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역시 치아가 없을 경우, 정상 노인에 비해 인지 능력 장애가 3.6배 높아진다는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국내의 연구 역시 다양하다. 대한구강보건학회지 39호에 따르면, 대구 거주자 60세 이상 노인 184명을 대상으로 치매척도 평가(MMSE)와 구강검사를 실시했는데 잔존치아가 0-10개인 노인은 치아가 모두 존재하는 노인에 비해 2.64배 치매의 위험도가 높았다.
또, 경도인지장애 환자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구강 상태 및 저작기능 비교를 다룬 2015년 논문에 따르면, 노인 99명을 대상으로 치아의 상태에 따라 기억력을 비교했더니 구강 상태 및 저작기능이 저하된 노인일수록 비례해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구강건강의 악화가 치매를 유발한다는 연구결과에 이어 치매환자의 구강관리가 환자의 삶의 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에비던스 역시 무수하다. 섭식연하장애(Dysphagia)나 흡인성(오인성)폐렴에 따른 전신질환 유발에 치과적 관리가 동반돼야 한다는 논리다.
손미경 조선치대 교수는 “일본의 경우, 요양기관에서 치매 노인에 대한 연하섭식장애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요양시설 같은 경우 치과의사를 비롯해 치과위생사, 의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등 이른바 ‘Team approach’가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노인요양시설에 있는 노인환자의 구강실태 및 치료수요도’라는 논문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사망원인 중 폐렴이 가장 높은데 그 중 70%가 흡인성 폐렴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버지니아대학 연구진은 1년에 2번 이상 치과를 방문해 치석만 제거해도 겨울철 폐렴에 걸릴 위험을 최대 87%까지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