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수어(手語)를 공부한 지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매주 월요일, 수요일마다 치과 진료가 끝나는 대로 경기도수어교육원을 찾아가 수어를 배우고 있는데, 수어를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주변으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은 다소 부끄럽지만 ‘대단하다’거나, ‘약자를 생각하는 모습이 멋지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수어를 배우게 된 건 그렇게 약자를 위하고 대단한 모습으로 비춰지기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치과대학 원내생 시절 나에게 치과병원은 출퇴근이 가능한 군대와도 같았다. 병원에서 원내생은 마치 부대에 갓 전입한 이병과도 같았는데, 숨 막히는 진료 현장에서 같은 조 동기들과의 이야기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조용하면서도 부산스러운 상황에서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간 삽시간에 주목받기 일쑤였고, 이 때 불현듯 든 생각이 ‘수어를 사용하여 대화를 하면 어떨까’였다. 예상외로 수어는 굉장히 훌륭한 대화 수단이었다. 처음에는 같은 조 동기들과 ‘필요하다’, ‘끝나다’, ‘아직’ 등의 간단한 수어 위주로 사용하였는데, 사용하기 전과 비교하여 의미전달이 명료하고 신속해 매우 만족스러웠다. 특히, 소아치과에서 수어는 매우 유용했는데,
몇 달 전 아무나 붙잡고 드라마 뭐 보냐고 물으면 열에 일곱은 중증외상센터라 답할 정도로 붐이었던 것 같다. 드라마에 메인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백강혁 교수는 죽어가는 환자도 벌떡 살려내는 그야말로 현대판 화타 그 자체다. 그리고 함께 등장하는 ‘1호’ 양재원 전공의는 어딘가 부족해보이지만 백강혁 교수 옆에서 점차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회차 내내 보여주는데, 두 사람의 케미를 보고있자면 어느새 시즌 끝까지 정주행해버리게 될 정도로 보는 사람을 드라마에 푹 빠져들게 만드는 것 같다. 지난한 공부와 실습 끝에 올해 드디어 치과대학을 졸업했고, 치과의사 국가고시에 무사히 합격했다. 당초 계획은 졸업까지 달려온 나 자신을 위해 몇 달간 휴식기간을 가진 뒤 페이닥터를 시작하는 것이었는데, 졸업하고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지인으로부터 수원에 페이닥터 공고가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집에서 불과 15분 거리임을 알고는 당장 이력서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원장님으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회신을 받았고,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지도교수님과 선배들이 항상 입이 닳도록 해주신 말이 있었다. 수련 없이 바로 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