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플란트가 꽤 많은 저희 치과 환자의 파노라마입니다. 지금껏 한번도 결제를 하지 않으신 저의 치과 최고액 장기체납환자(전액 미결제) 입니다. 70년대와 80년대 산업화 시절의 주역. 치과도 없었고, 치과도 잘 안가던 시절이고, 자식들 열심히 키우시고 부모님 봉양하시던 직장인이셨고. 치열하게 자식들 키우시던 시절부터 막내아들 치대 보내고 아들 본과 실습 시작할 때까지, 오직 칫솔질이 치아를 위한 유일한 치료이자 투자이셨겠습니다. 막내아들(92학번) 치대 보내시고, 5년을 기다리시다가 본인의 은퇴(96년도)와 맞물려, 막내 아들 원내생 스케일링 실습부터 본격적인 치과 치료는 시작되었습니다. 치주과 스케일링 실습이후 치주과에서 잇몸치료와 하악 4전치 발치 하셨고, 보철과에서 하악 전치부 6전치 브릿지와 36번 크라운을 하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환자삼아 보호자삼아, 진료 보조의 미명하에, 수련의 선생님들의 치료를 모두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아빠는 자식이 다니는 학교 수련의 선생님들께 치료 받으시면서도, 너무도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말끔해진 치주치료와 보철치료로, 아빠는 그 시절 세상을 다시 사시는 듯 행복해 하셨고, 치료해 주시던 선생님들을 지금까지 입이 닳
오후부터 내린 장맛비는 어두워지고 나서는 장대비로 바뀐다. 이따금 번개가 치곤 한다. 천둥소리도 그 뒤를 따르고. 밤 10시 즈음.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이 시간에 뭔 전화다냐, 비상인가?” 아빠는 혼잣말 후, 전화기를 드신다. “네. 여보세요.” “수북하고 월산에서?” “알았어” 전화를 끊고 아빠는 잠옷을 벗고, 곤색의 작업복으로 갈아입으신다. “나가 봐야겄네” ‘이렇게 비가 온디, 나갈라고요.?’ “그럼 나가봐야지. 비상인디, 수북하고 월산이래” ‘아이고 장마 때만 되면 난리네요.’ “벼락만 안치믄 되는데… 벼락이 칭께, 고장이 잘 나부네” “우리 밥줄인디 열심히 고쳐줘야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전화랑 전기가 끊기면 불편하잖는가? “ 준비하는 5분도 안 된 사이, 밖에는 어느새 빨간색 우체국 공사 차량이 와서 대기 중이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셔요.’ ‘아빠 잘 다녀오세요.’ 우리 오남매는 아빠에게 배웅 인사를 하고, 다들 각자의 방, 이부자리로 들어간다. 나는 엄마랑 큰방에서 눕는다. ‘뭔 일 없겠지?’ ‘아빠는 뭐든 잘하시잖아! 만물박사! 아무 일도 없으실 거야!’ 나는 호기롭게 아빠를 자랑삼아 위안을 삼고 어느새 꿈나라로 간다. 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