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본 영화에서 주인공이 강연을 다니면서 청중들에게 던졌던 질문입니다. “당신 가방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이제 영화 제목도, 주인공이 누군지, 내용이 뭔지도 잊어버렸지만, 저 질문만은 제 마음에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내 가방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맘처럼 치료가 안 되는 환자들에 대한 걱정, 공부안하는 딸아이에 대한 욕심, 떨어져가는 수입에 대한 불안감, 의욕없는 남편에 대한 불만, 정치적 의견이 다른 친정엄마와의 갈등, 멋진 여행에 대한 욕구, 때때로 밀려오는 건강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잘 살고 있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 오랜만에 (남자)대학동기와 카톡으로 이런 저런 애들 교육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친구가 위로를 해줍니다. “치과에서 일하고 피곤한데 집에 와서 저녁 준비하고 빨래에 청소에 집안일하고 공부봐주고 얼마나들 힘들겠어. 땡땡이가 엄마 마음을 조금만 이해해주고 파이팅해주면 얼마나 좋을꼬?” 친구가 써 놓은 걸 보니, 내가 정말 많은 일을 하며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것만 하나요? 쉬는 날은 친구들도 만나야지, 운동도 해야지, 취미활동도 해야지…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일상의 일들
딸아이가 일요일 오전부터 집을 비운 날이면, 점심은 라면입니다. 라면은 혼자 있는 사람을 위해 발명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완벽합니다. 딱 한 사람을 위한 포장에, 조리시간도 5분도 안 걸리고, 설거지거리도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얼마나 다양한 라면이 나오는지, 매일 매일 다른 라면으로 바꿔 먹어도 한 달간 새로운 맛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라면을 입에 넣는 순간, 상상했던 그 맛이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재료를 뭔가 더 넣어줬어야 하는 건가, 내가 좋아하는 맛의 라면이 아닌 건가. [1박2일] 멤버들이 먹는, 그 맛있는 라면이 아닌 것 같은데. 문득 깨닫습니다. 나는 혼자 먹고 있구나. 예전에 MT 가서 한밤중에 큰 냄비에 서로 젓가락을 밀치며 먹던 그 라면 맛이 아니구나. 가끔 보는 예능 프로그램 중에 [외식하는 날]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연예인 가족들이, 연인들이, 엄마와 아들이 외식하러가서 먹는 와중에, 한 작가님이 혼밥을 즐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즘은 정말 혼밥해도 좋은 식당도 많고, 혼밥을 하는 것에 긍지를 지닌 분들도 있는 분위기인지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갑자기 그 분께 밥을 같이 먹는 짝꿍이 생겼습니다.
10년 뒤에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때도 치과의사를 하고 있을까? 2004년, 봉직의로 있다가 개원을 하게 되면서 “10년 일기장”이라는 것을 샀습니다. 제일 앞 장에는 앞으로 10년의 계획을 세워보는 페이지가 있었습니다. 희망에 부풀어 대출은 언제 갚고, 집은 언제 옮기고, 출산은 언제 하고…등등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들은 2~3년도 그대로 실현하기 어려웠습니다. 뜻밖의 일들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생겨나고, 제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인해 인생은 제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수련의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인생은 정해진 길을 따라왔을 뿐이었기에 제가 세운 계획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붙어있는 유치원 광고들을 보면서 가까이에 어떤 유치원이 있는가 살폈지만, 정작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에 저는 그 곳에서 두 번이나 이사를 한 뒤였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아이의 유치원을 선택하였습니다. 곧 50이라는 나이가 되고, 점점 노후의 삶이 걱정이 되지만, 이제는 1년 뒤의 계획도 세우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10년 뒤에도 치과의사를 하고 있
지난 일요일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남편은 중국에 출장 가 있고, 딸아이는 영어학원에서 도라산으로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생일이라고 별다른 계획 없이 아침을 맞았습니다. 생일에 아무 약속도 없다고 하니, 동네 친구가 근처에 새로 생긴 빵집에서 브런치나 하자고 합니다. 망설이다 No, 친정엄마가 점심 사주신다는 말에도 No. 모든 것이 귀찮다는 생각에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집에서 조용한 생일을 보냈습니다. 이 또한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득 언제부터인가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이 아니면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현재의 나의 세계가 엄청나게 좁아져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의 나는 지금과는 정말 달랐지요. 누가 만나자고 해도 Ok, 누가 어떤 일을 부탁해도 Ok. 뭘 해보겠냐는 제안에도 무조건 Ok. 할까 말까 하는 고민에는 무조건 하는 것으로. 그 때의 생활은 너무나 복잡하고 정신없어서 때로는 우선순위에 밀리는 일로 원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만날 사람은 너무나 많았고,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찾기 어려웠지요. 바깥에서 활동하는 내가 진짜인지, 내 안에 과연 나라는 존재가 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아마도 그래
출근하는 길, 막연한 불안감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오늘은 어떤 환자가 올까? 내가 진료 중에 실수를 하지 않을까? 막상 진료시간이 시작되면 잠시 불안감은 잊고 현실에 몰입합니다. 그러나 진료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심장이 또 한 번 바운스 바운스합니다. 내가 오늘 허튼 말을 하지는 않았을까? 뭔가 놓치고 지난 일은 없을까? 그럴 때마다 어떤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씁니다. “앉아있을 때는 앉아 있는 생각만 하고, 서 있을 때는 서 있는 생각만 해라.” 앉아있을 때 설 생각을 하며 불안해 하고, 서 있으면서 앉을 걱정을 하고 있다 보면, 앉아 있는 그 순간, 서 있는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없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 말씀은 학생 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국어수업 시간에 수학숙제를 하고, 수학시간에 영어숙제를 하고 있다 보면 아무것도 제대로 안 된다. 그 수업시간엔 그 과목만 공부하라는 선생님 말씀이었습니다.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워킹맘으로서 가능하면 지금도 그 원칙을 지키려 애씁니다. 병원에서는 병원 일만 생각하고, 퇴근해서 집에 가면 잠시 병원일은 잊고 가정 일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출근을 하면 믹스커피를 한
대학에 입학해서 교양영어 시간에 배웠던 영어책의 제 1장에 있었던 에세이의 제목이 “The Show Must Go On”이었습니다. 교과서에 있던 에세이의 제목이 27년이 지나도록 제 머릿속에 이렇게 남아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에세이의 저자인 Harry Golden은 말합니다. “연극을 하는 배우들은 가슴 속에 어떤 슬픔이 있어도 무대 위로 나아가 연기를 한다. 그런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박수를 받을 사람은 배우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속에 슬픔을 가진 채로 자신의 일을 계속해나간다. 모든 사람에게 쇼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연말연시에 경과규정의 전문의 시험을 비롯하여 직장에서, 집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생기면서 한 해의 정리나 새해결심 따위는 해보지도 못하고 정신없는 두어 달을 보내며 문득문득 떠올렸던 문장이 “The Show Must Go On”이었습니다. 일은 일대로 해야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돌보면서 시험공부도 해야 하고, 이리 저리 터진 일들을 처리하려니 머릿속엔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떠올라 집중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시험공부를 하려다가도 걱정거리가 떠올라 고민을 하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10월말에 경주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정기학회가 있어 다녀왔습니다. 몇 년에 한 번씩 경주에 가본 적이 있어도 학회로 경주에 방문하기는 1999년 이후 무려 18년만이었습니다. 18년 사이에 나는 얼마나 많이 변하였던가. 아니, 내 주변의 상황이 변한 것인가요? 그 때는 수련을 받을 때라 혈혈단신 자유로왔고 학구열도 넘쳤던 때였지요. 지금은 그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번처럼 지방에서 학회가 열릴 때면 병원 스케줄 조정은 이차적인 문제고, 아이 혼자 집에 두고 와야 하기에 자유의 기쁨을 누리기 전에 내가 없는 동안, 아이와 집안일에 문제가 없도록 준비해두어야 하는 마음의 무거움이 더 큽니다. 사실 지방학회 뿐만이 아닙니다. 오늘은 이른 아침에 열리는 세미나에 다녀왔는데, 아이를 깨우고 고구마 두어 개를 에어프라이에 돌려놓고는 허둥지둥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예전에는 치의신보를 보면 이번에는 어떤 재미있는 강의가 있을까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신문을 보면서도 “어떤 강의”를 들을까가 아니라 “어떤 날짜”에 하는 세미나를 갈 수 있을까를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일요일에 열리는 세미나에 가서 여자선생님들을 보면 “저 선생님은
정말 오랜만에 수련의 때 보던 두꺼운 교정학책을 펴들고 목차를 살폈습니다. 그 중에 제 눈이 제일 먼저 간 곳은 ‘성장과 발육’ 파트 중에서도 “사회성과 행동발달”이었습니다. 수련받을 때 “성장과 발육”을 1년간 세미나로 공부했지만, 해부학적인 성장과 발육에만 관심을 가졌지, 심리학적인 발달은 무심하게 지나쳤던 듯 합니다. 교정치료라는 것이 “해부학적이고 물리적인 치아이동”이라고 생각을 했지, 심리학자도, 정신과의사도 아닌 제가 교정치료를 하며, 환자의 마음까지 살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가씨였던 치과의사가 엄마가 되고, 우리 아이가 아가에서 사춘기 소녀가 되고 보니, 이제는 단지 12살 환자의 치아를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또는 “사춘기 청소년”의 치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원 약속도 잘 안 지키고, 평소에도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은 여중생 아이를 치료하고 있는데, 치료 중에 아이가 아팠나봅니다. 그 순간 아이의 입에서 나온 욕설! 그 순간 저도, 보조를 하던 치과위생사의 손도 멈췄습니다. 이것을 아는 척 하고 혼내줘야 하나, 모른 척 해야 하나… 정말 짧은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하고, 마치